가상화폐, 오만한 기성 금융·화폐 권력에 대한 테러
지난 300여 년간 발권력이란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온 중앙은행 제도가 도전받고 있다. 가상화폐가 들불처럼 번지면서다. 발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저자가 암호화기술을 다루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올렸다. 개인과 개인이 은행과 같은 중개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송금·결제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이듬해 직접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개발해 기술을 구현했다. 당시는 시장 실패에
삼성-애플 스마트폰 혁신경쟁 다시 보기
매년 가을마다 스마트폰 전쟁이 벌어진다. 스마트폰 시장 양대강자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연이어 최신폰을 내놓기 때문이다. 올해 삼성과 애플은 각각 갤럭시 노트8과 아이폰X를 내놨다. 특히 아이폰X는 출시 10주년 기념폰이란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맘때면 늘 ‘혁신’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주로 “혁신이 없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실제로 요즘 스마트폰에선 ‘깜짝 놀랄 혁신’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갤럭시 노트8과 아이폰X도 마찬가지다. 듀얼 카메라, 얼굴인식, 무선 충전 같은 요소들이 추가됐지만 패러다임을 확 바꿀 정도는 아니다. 혁
님아, 이 영화를 놓치지 마오
‘A열 3번.’ 극장 A열에 앉아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싶었다. 노트북 앞에서 집중해 타자치는 시간이 많은 탓에 목이며 어깨가 뻐근해지는 자세를 의식적으로 피해오곤 했다. 영화 취재를 맡고나선 이것도 일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다 보니 스크린과 눈높이가 맞는 좌석을 찾아 예매하는 건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던 내가 2시간 내내 고개를 젖혀 스크린을 올려다 봐야하는 ‘A열 3번’을 선택했다. 아니, 이렇게 선택된 것도 감사할 일이었다. 개봉 직후부터 이른 아침과 자정 시간대만 상영을 하는 동네 극장은 애초에 포기했다. 평일 퇴근 시간대,
마루야마 겐지와 ‘마초 가부장’
조선일보 Books의 지면을 개편하면서 새로 시작한 코너 중 하나가 ‘디어 라이터(Dear Writer)’다. 퓰리처상을 받고도 영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쓰는 줌파 라히리, 세계에서 가장 젊은 철학교수인 옥스퍼드대 윌리엄 맥어스킬 등을 모셨는데, 가장 격렬한 호응과 논란을 이끌어낸 인물은 따로 있었다. 50년째 산골에 파묻혀 홀로 문학의 광맥을 파고 있는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74)다. 사실 겐지에 대한 한국 문단의 지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학은 떼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한 뒤 시골로 들어가 남 눈치
뉴욕 군함도 홍보물 오류 파문의 교훈
외교는 다른 나라와 협상을 통해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다. 그런데 특정 외국과 갈등 상황을 계기로 해당 국가를 겨냥한 집단적 증오 표출이 외교 정책의 요체로 둔갑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최근 보통 시민도 외교관 역할을 하는 상황이 잦아지면서 의도와 달리 증오 표출이 관심사가 되고, 결국 국익 훼손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자주 발생한다. 지난 7월 뉴욕 타임스퀘어 군함도 홍보물 오류 파문에도 시민 외교의 증오 표출 요소가 포함돼 있다. 일제 시기 한국인 강제징용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광고판에서 사
삼성-언론 유착과 언론위기의 본질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에 대한 1심 선고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원이 25일 1심 선고일에 생중계를 허용할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 등 5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하거나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으로 규정하며, 이 부회장에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씨 모녀 등을 지원한 혐의다.삼성 쪽은 지원 사실은 인정하
빚 키우는 정부의 ‘재정적 해이’
국가의 파산(sovereign default)은 생각보다 잦은 일이다. 16세기 무적함대를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은 과도한 왕실 운용과 전쟁 비용 탓에 1627년 파산을 선언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작 소설 ‘돈키호테’는 당시 경제 위기에 따른 시대상의 풍자였다. 이집트는 19세기 말 국가 파산으로 인해 식민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중해와 홍해의 관문인 수에즈 운하 건설이 그 역사적 비극의 도화선이었다.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르트 메릴랜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800년 이후 세계적으
페이스북과 테슬라의 AI논쟁이 주는 교훈
“인간문명을 위협하는 존재다. 지금부터라도 규제해야 한다.”“기술은 중립적이다. 인간이 쓰기 나름이다.”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 간의 ‘인공지능(AI) 논쟁’이 화제다. 테슬라와 페이스북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경영자들이다. 이들이 요즘 가장 뜨거운 키워드인 AI를 놓고 완전히 다른 의견을 보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먼저 화두를 던진 건 머스크였다. 그는 지난 7월 초 열린 한 행사에서 “AI는 인간의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규제를 시작해야…
영화 '택시운전사'와 송강호의 '마음의 빚'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한 힘을 지닌다. 시간과 함께 머릿속에서 흐릿해지는 사건들이 있는가하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그때 느꼈던 기분, 분위기가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기억, 내 마음에 딱 자리를 잡고 있는 어떤 사건들이 하나쯤은 모두에게 있으리라. 내게는 광주 망월동 5·18 옛묘역이 그런 곳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찾은 그곳에서 마주했던 흑백사진 속 한 여성을 기억한다. ‘임신 8개월에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맞아 아이
“베이브는 정말 귀여웠지만, 옥자는…너무 커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영화 ‘옥자’를 관람했다. 보는 동안 저녁 메뉴가 살짝 걱정됐다. TV에서 20년 전 할리우드영화 ‘꼬마돼지 베이브’를 보고도 한 달 가까이 육식을 거부했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영화는 영화고, 식사는 식사란다. 아들의 설명은 이랬다. “베이브는 정말 귀여웠지만, 옥자는…너무 커요.”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반성과 동물학대 및 공장식 기계도축에 대한 반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런 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관객의 죄책감과 허영심을 동시에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