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거부
지난 2011년 7월19일, 서울중앙지법은 김갑돌씨(가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튿날 김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김씨는 “수사기관에서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겠다”며 조사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검사는 서울구치소장에게 “국가정보원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인치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했다. 구치소 교도관들은 김씨를 조사실로 ‘끌고’ 갔다.구속 수감된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거부할 경우, 구치소에서 피의자를 강제로 끌고 와 조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답은 ‘그렇다’다. 2013년 대법원은 “
"엄마에게 좀 더 친절하렴"
고3이 끝날 무렵 폴더형 휴대전화를 처음 갖게 됐다. 제일 먼저 엄마 번호를 저장했다. 송명희씨. ‘엄마’라는 호칭 대신 ‘송명희씨’라는 이름을 꾹꾹 눌러 찍었다. 나는 늘 엄마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속내도 있었다. 엄마가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송명희씨인 것처럼 나 역시 ‘누구의 딸’이 아니라 장일호씨라는 걸 선언하고 싶었다. 자라는 동안 수많은 날을 엄마와 반목하면서 알게 됐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지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는 걸.여기, 그런 소녀가 또 한 명 있다. 영화 레이디 버드 속
거짓뉴스는 진실보다왜 더 잘 퍼질까
어느 날부터 서라벌에 노래가 조금씩 유포되기 시작했다.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과 만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서라벌 전역에 퍼졌다. 결국 아버지인 진평왕이 선화공주를 내쫓아버린다. ‘삼국유사’ 서동요 설화에 나오는 얘기다. 현재로선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설화를 통해 배울 부분은 적지 않다. 서동요는 왜 그토록 쉽게 전파됐을까? 물론 배후에 목적의식을 갖고 허위 정보를 유포하려는 정교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내용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전파되진 못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요즘
북핵 문제 역사 교훈과 적폐 청산에 대하여
한국인은 물론 한반도에 관심이 많은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2018년은 역사적인 한 해가 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용의를 천명하고,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고,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기정사실화하는 뉴스를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엄청난 상황 변화에 대해 원인과 배경, 향후 전망을 제시하는 분석과 제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한 몇 가지 오해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 교훈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는 것은 문제 진단과 처방, 치…
방치할 수 없는 한국기업의 부패 리스크
최근 서울에서 ‘2018 페어 플레이어 클럽 서밋 및 반부패 서약 선포식’ 행사가 열렸다. ‘페어 플레이 클럽‘은 반부패운동 확산을 위한 민관협력포럼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가 주최하고 지멘스가 후원했다. 국정농단 및 정경유착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한국으로서는 후원사인 지멘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지멘스는 최악의 부패기업에서 최고의 반부패기업으로 거듭난 전화위복의 주인공이다. 2006년 말부터 공금횡령, 탈세, 비자금, 뇌물 등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몰리자 개혁에 착수했다. 오랫동안 조직에 물든 부패 관행과…
누가 ‘자유’와 ‘민주’를 정쟁의 도마 위에 올리는가
보수와 진보 세력 간 갈등이 국정교과서를 놓고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마련한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 기존 ‘자유민주주의’를 모두 ‘민주주의’로 대체하면서다.시계 바늘을 7년 전으로 돌리면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교육과학부가 역사교육 과정을 수정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는 내용으로 집필 기준을 바꿨다.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바꿔 잡을 때마다 ‘자유’와 ‘민주’를 입맛에 맞춰 역사 교과서에 넣고 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장민호·백성희를 기억하며
브라질 작가 파울루 코엘류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띄웠다. ‘Reality is different from fiction. In fiction, things need to make sense(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선 모든 게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 문장을 보며 ‘세상은 왜 이렇게 무질서하고 엉망진창인가’ 하는 불평으로 읽었다. 지구 반대편도 현실은 으레 팍팍하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문학과 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문학과 연극의 풍경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고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법관 사찰'은 사실이었다. 법원행정처가 행정처 심의관 출신 '거점 법관'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법원 내부게시판, 포털사이트의 익명 카페 등을 총동원해 판사들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문건이 발견됐다. 행정처에 비판적인 법관들은 핵심그룹과 주변그룹으로 분류됐다. 2015년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면서 그 위원 후보로 추천할 판사들의 성향·평판을 뒷조사해 빨강·파랑·검정으로 분류한 문건 리스트도 나왔다.법원 내 특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막거나 축소하고, 심지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 전략과 지원단을 구성하는 식으로
영화 ‘공동정범’이 던진 질문
한때 외신 사진기자였던 홍진훤 사진가는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철저한 포토저널리즘 신봉자’였다. 사진으로 세상을 고발하고 어쩌면 바꿀 수도 있다고 믿었다. 2009년 1월20일 벌어진 용산참사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보고 느낀 것과 내가 찍은 사진과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서 보이는 게 너무 달랐어요.” 불이 나고, 사람이 죽고, 울부짖는 현장을 담은 사진은 그 자체로 불행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참사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대신, 참사의 의미를 정의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라’는…
페이스북 알고리즘 변화가 언론사에 던진 과제
페이스북 때문에 살짝 시끄럽다. 매체들의 신뢰도를 평가한 뒤 그 결과를 노출 알고리즘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때문이다. 독자들이 신뢰도를 평가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시끄럽긴 매한가지다. 언론의 신뢰도를 어떤 잣대로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게 비판의 골자다.올 들어 페이스북은 여러 가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연초부터 언론사들의 콘텐츠보다 친구나 가족의 글을 더 우대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몰고 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알고리즘 변경으로 뉴스피드에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5%에서 4%로 줄어들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