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서치’를 경험 안 한 사람 있어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긴장된 몸을 풀고 낮게 탄식했다. 우리는 서치를 통해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하품 나는 이야기를 ‘이렇게’도 할 수 있는 시대에 도착했다. 서사는 전통적인데 이를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기법은 참신하다. 정말이지 감탄사 말고는 더할 말이 없었다. 극장을 나서면서 허공에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세상에, 아직도 서치를 경험하지 않은 분 있나요? 그게 뭐냐고요? 그러니까….” 그랬다. 이 영화는 ‘본다’가 아니라 ‘경험한다’라고 써야 마땅한 작품이다. 내가 온전히 서치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건 먼저 영화를 본
예사롭지 않은 AP의 블록체인 껴안기
미국 대표 뉴스통신사 AP가 갓 출범한 시빌이란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와 손을 잡았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 유통을 재점검하겠단 것이 이번 제휴의 핵심 포인트다. 그 대가로 AP는 시빌에 기사를 공급하기로 했다. 시빌은 지난 해 7월 출범한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 뉴스 플랫폼이다. 팩트체크, 기사 평가부터 보상까지 전 과정이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이뤄진다. 이런 차별성 덕분에 지난해 10월엔 500만 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올 들어선 미국 공영라디오 NPR 최고경영자(CEO) 출신 거물급 언론인 비비인 쉴러를 영입해 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장애물과 과제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추진을 제안한 것은 우리 외교사 차원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다. 특정 국가 발전을 위한 구상이 아니라 참여 국가 전체의 공동 이익을 상정한 개념이라는 점은 매우 주목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제안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중요한 배경이다.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해 나라마다 철도 궤도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 자주 거론된다. 그렇지만 기술적 문제는 지정학적 요인에 비하면 쉬운 문제다. 경제 대국인 일본이나 경제…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할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고용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경제팀의 ‘팀워크’를 강조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잇따른 갈등 표출에 대한 ‘경고’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두 사람 간 이견이나 갈등이 표출된 것은 벌써 여러 번이다. 최근 고용쇼크 관련 당정청회의에서 향후 정책방향을 두고 장 실장은 현 정책 고수 의지를, 김 부총리는 수정 가능성을 내비치며 시각차를 보였다. 8월 초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 때는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
돈스코이호와 함께 침몰한 언론의 게이트키핑
지난달 17일 11시45분 연합뉴스에 ‘113년 전 울릉 앞바다서 침몰한 러시아배 돈스코이호 발견’이란 제하의 기사가 떴다.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오전 9시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일 하루 새 쏟아진 돈스코이호 관련 보도는 150여건. ‘150조 보물선 돈스코이호 발견, 113년 논란 종지부 찍다’, ‘울릉도 바다 속 돈스코이호 발견…10조원 가치 추정’ 등 대다수는 신일그룹 발표를 그대로, 혹은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것들이었다. ‘돈스코
노회찬의 죽음과 ‘르상티망(복수심)’
자살은 생명체 내부의 아득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발생과 분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야 할 때, 또는 세포가 훼손되어 암세포로 바뀔 수 있을 때 세포자살(apoptosis)이 일어난다. 더 큰 이익, 몸 전체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자살은 세포 수준과는 사뭇 다르다. 매우 극단적인 ‘공격’이다. 남은 이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긴다. 에밀 뒤르켕이 ‘자살론’(1897)에서 “자살은 개인적인 요인이기보다 사회적인 사실 때문이다”라고 쓰기 전까지 자살은 죄악으로 치부되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스스로 목숨
침묵하는 대법원
“변호사 7명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나왔습니다.” 13일 저녁 진보 성향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 브리핑대에 섰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고위 법관들의 인사적체 해소와 이들에 대한 대법원장 영향력 강화를 위해 ‘상고법원’ 설립을 총력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이에 반대하는 변협과 민변 등에 대한 대응문건을 작성했다. 이날 변호사들은 대법원 법원행정처 문건들에 실린 방안이 실제 실행됐는지 피해자 입장에서 조사를 받았다.검찰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제시한 문건은 지
‘불온한’ 영화 ‘파도위의 여성들’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와 그의 동료들은 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신중절을 결정함에 있어 여성 자신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공간을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배를 띄운다. 임신 초기라면 복용만으로도 임신중절이 가능한 유산유도약을 잔뜩 실은 채였다. 해안에서 20km 떨어진 국제수역에서는 선박이 등록된 나라의 법을 따르면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임신중절이 금지된 국가의 항구에 배를 대고,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태워, 임신중절이 합법인 네덜란드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공해상으로 나갔다. 2001년 네덜란드 로
‘휴대폰 위치추적 위헌’ 판결 톺아보기
미국 연방대법원과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흥미로운 판결을 연이어 내놨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휴대폰 위치정보 추적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다. 두 판결은 휴대폰 위치 정보도 중요한 개인정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수색영장 없이 휴대폰 위치정보를 수집한 관행을 문제 삼았다. 특히 휴대폰 정보는 ‘제3자 원칙’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점이 눈길을 끈다. 제3자 원칙이란 자발적으로 넘긴 정보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유선전화에 적용했던 이 원칙을 휴대폰 위치정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미국의 이익
한반도 정세 격변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더욱 활발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전통적인 엘리트 집단은 줄잡아도 90% 이상이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반응은 현재는 소극적 회의론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적극적인 반대 행동으로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워싱턴 엘리트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혐오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