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배상 논란과 문명국가의 과제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은 우려했던 대로 심대한 후폭풍을 만들어냈다. 지난 7월 이후 한국과 일본의 외교, 무역 분쟁을 유발했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외교 충돌로 비화됐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과 일본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오히려 미, 일과 충돌하는 장면은 한국 외교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외교 차원에서라도 한미 동맹 정상화, 한일 관계 수습에 나서야 하고, 이를 위해 근본 문제인 강제 징용 배상 문제 해결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
인플레보다 무서운 디플레가 온다
낯선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세계 경제에 공포의 얼굴로 다가온 건 1930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의 반대말쯤으로 치부됐다.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쟁보상금을 내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던 독일에서 벌어진 통제 불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목격한 이들은 디플레를 오히려 ‘축복’이라며 찬양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디플레는 전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킨 대공황의 전조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디플레라는 망령을 불러내는 주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단상
“죄송하지만 벌레가 여기서 들어갔는지 어떻게 압니까?”두 번째다. 동네 앞 중국집에서 시킨 짬뽕에 의문의 갈색 벌레가 빠져 배달돼 온 게 말이다. 난 벌레를 시킨 적이 없다. 벌레 육수가 우러난 짬뽕을 더 먹기도 싫다. 8000원만 날린 셈이다. 블로그에 생생한 벌레 섭식 후기와 다시는 시켜먹지 말라며 중국집 ‘좌표’를 남긴다면 분노가 조금은 풀리겠지만, 글을 쓰면 중국집 주인은 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날 고소할 것이다.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관크’ 논란과 공연 관람 매너
‘회전문 돈다’라는 말이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업계에서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는 관객을 일컫는 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상반기에 가장 많이 본 뮤지컬은 약 50회차 중 모두 13번을 봤다. 이처럼 특정 공연에 ‘꽂힐 때’를 대비해 공연비로만 쓸 소액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두는 편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이렇게 보는 것도 아니며, 놀랍게도 내가 특별히 다른 관객보다 많이 보는 편도 아니다. 비슷한 질문을 듣곤 한다. ‘같은 공연’을 보는 일이 지겹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특성을 간과한 말이다. 같은 작품이라
야구에 등장한 로봇 심판
포수 뒤에 있는 심판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한다. 여기까진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여느 심판과 조금 다르다. 뒷주머니에 아이폰, 귀에는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끼고 있다. 그리곤 투구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으로 판정한 내용을 그냥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제휴한 애틀랜틱리그에서 시험 중인 로봇 심판 얘기다.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는 선진적인 제도를 먼저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검증된 제도는 메이저리그에 도입된다. 따라서 메이저리그에 로봇 심판이 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몇 년 전까
‘쑨양 패싱’이 남긴 것
지난달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에선 물 안 보다 물 밖 상황이 더 화제였다. 익히 알려진 ‘쑨양 패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수영 스타 쑨양사 진이 약물 복용 및 도핑 검사 방해 논란에 휩싸이고도 버젓이 세계선수권에 나와 메달 따는 모습을 다른 나라 선수들이 용납하지 않았다. 일부는 쑨양과 시상대에 같이 서길 거부했고, 기자회견에서 “쑨양을 존중할 이유가 없다”고 공개 비판한 선수들이 숱했다. 돌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국제수영연맹(FINA)의 경고도 소용 없었다. 선수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말했
‘탈일본’의 시작은 대-중소기업 상생 경영
수년 전 삼성 미래전략실 소속 사장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연간 영업이익 50조원 중에서 10조원 정도를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에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질문했다. 이익이 40조원으로 줄어도 여전히 재무적 성과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대신 협력업체를 쥐어짠다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고, 협력업체의 혁신역량이 강화되면 삼성전자의 경쟁력도 높아져 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지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비웃음이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한·일 외교 충돌에서 승리하려면
2019년 7월4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안보와 관련한 수출 관리 조정이라고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일 관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중대 도발이다. 그런데, 우리 대응을 보면 효과적이지 않은 양태가 노출되면서 우려감도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적어보자. 1. 이번 외교 충돌에서 적군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부에서 아베 총리를 제쳐놓고 문재인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무능 논란은 적전 분열을 초래하고 아베
한·일 무역전쟁에 볼모로 잡힌 경제
‘기업 2만2828개 부도(1998년 기준), 실업자 157만명(1999년), 자살자 8569명(1998년)...’ 국가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비극 ‘IMF 환란’. 그 배경에 외교 문제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O-157 병원균이 검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클린턴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다. 한·일 간 마찰도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발언하면서다. 외환보유고 고갈 직전 한국의 지원 요청에 미국 월가와 일본 대장성이 등을 돌린 배후엔 이런 외교적 갈등 상황
후배 좀 모시고 살면 안 됩니까
검찰 내부에서 차기 검찰총장 지명은 용기있는 퇴진, 이른바 ‘용퇴(勇退)’의 신호탄으로 불린다. 검찰에선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나 후배가 자신의 윗자리를 차지하거나 총장에 임명될 경우 스스로 조직에서 나가는 관행이 있다. 언론과 검찰 내부에선 이를 ‘용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왔다. 용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 △후진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스스로 관직 따위에서 물러남. 검사들이 받아들이는 용퇴의 의미는 후자다.용퇴 관행은 뿌리가 깊다. 오는 7월 24일 임기만료로 퇴임을 앞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