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사랑은 비를 타고… 아직 살만한 세상
장마가 끝난 지 오랜데 끄느름하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다음 취재 일정까지 여유가 있어 점심은 고등어구이가 좋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몰았다. 보조석에는 카메라를 올려뒀다. 운수가 좋거나, 혹은 나쁘더라도 뭐 하나 건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생선구이집에 가는 길, 바깥을 바라보다 급히 창을 내렸다. 등이 굽은 노인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리어카를 끌었다. 그때 옆에 있던 여성이 우산을 내밀고 빗물을 가렸다. 기울어진 우산. 각도는 13도 남짓. 어깨는 다 젖었다. 영화에 나왔으면 진부하고 뻔했을 장면인데, 현실 속에서 마주치니 그
[이달의 기자상] CJ 등 계열사 TRS 부당지원 '손 놓은 공정위'
IMF를 불러온 무분별한 채무보증. 대기업 줄도산으로 국가 경제가 휘청이자 정부는 법으로 채무보증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대기업들은 채무보증과 같은 효과를 불러오는 꼼수 금융상품을 찾았습니다. 바로 TRS입니다. 모회사가 직접 채무보증을 하지 않고 중간에 증권사 등을 끼워 넣어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상품입니다. 하지만 부실 계열사를 위한 부당지원 용도로 쓰이면 결과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가 됩니다.우선 부당지원이 자명해 보이는 CJ 그룹을 첫 취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완전자본잠식으로 도산해야 할 CJ 푸드빌이 2015년 500억의
[이달의 기자상] 사라진 마을: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작은 제보에서 시작한 취재였다. 북촌 한옥마을 한 주민은 지난 7월 초 기자를 만나 올봄부터 마을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워졌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1년 이 마을의 고즈넉함에 반해 이사를 왔는데 전혀 다른 동네가 됐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베니스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처럼 해외 유명 관광지만 겪는 줄 알았던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탓에 주민의 삶이 침범당하는 현상)이 우리 이웃의 마을까지 덮친 것이다.취재 지역을 넓히기로 했다. 박준석송주용 기자와 함께 북촌뿐 아니라 부산 흰여울문화마을과
[이달의 기자상] 거짓이 부른 '반쪽 잼버리'
잼버리 취재해 봐요. 지난 4월 잼버리의 잼자도 모르는 제가 취재에 뛰어든 계기는 데스크의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선배들이 야마구치 잼버리 사례를 통해 배수와 폭염 문제, 무리한 모집 과정을 지적해왔습니다. 이미 문제를 다 짚었는데 더 남아 있을까? 대회 전, 야영장 침수 문제가 터지자 대책을 세우겠다며 현장을 찾은 고위 관계자들. 잼버리 성공 위해 방문한 고위 관계자로 기사 방향을 잡고 따라나섰습니다. 하지만 다 함께 잼버리 삼행시를 외치고 기념 촬영으로 대책 마련은 끝났습니다. 모든 신뢰가 무너졌습니다.당시 야영장은
KBS 'LH 전관특혜' 보도, 부실시공 고질적 원인 근절할 계기 마련
제395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10개 부문에 76편이 출품됐다. 올들어 가장 많은 출품작이 경쟁을 벌인 결과 4개 부문에서 7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은 취재보도1부문이었다. 20편이 출품된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KBS의 LH 부실시공과 전관특혜, 한국경제신문의 서이초 교사 극단적 선택...교권이 무너졌다, 그리고 SBS의 조직적 강매성매매 강요 디스코팡팡 실태 폭로 등 3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우선 LH 부실시공과 전관특혜 보도는 LH 아파트 부실시공 이면에 LH의 오래된 관행인 전관특혜가 자리하고 있
[이달의 기자상] LH 부실시공과 전관특혜
지난달 GS건설 부실 설계시공으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보도에선 이 질문에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럽게도 LH 부실시공과 전관 특혜로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LH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남양주 아파트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는 제보가 이번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LH 발주
[이달의 기자상] 서이초 교사 비극… 교권이 사라졌다
서이초 교사 비극교권이 사라졌다 보도는 믿기 어려운 제보에서 시작됐습니다. 단순 사건사고로 보기에는 교실이라는 장소의 상징적 의미가 컸습니다.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맞고, 무고하게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던 공교육 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한폭탄과도 같았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은 교권 붕괴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어린 교사 한 명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초보도 이후 서이초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근조화환이 이어졌습니다. 선생님들은 나는 곧 당신이라 연대하며 거리에 나왔습니다. 7주 연속 수만 명의 선생님들이 주말을 포기하고 여름 아스팔
[이달의 기자상] "조직적 강매·성매매 강요" 디스코팡팡 실태
처음 취재원에게 수원역 디스코팡팡과 성매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두 단어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월미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디스코팡팡은 생각보다 꽤 가까이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수원역 디스코팡팡에 잠입했습니다. 금방 들통이 났지만 DJ들이 어떻게 10대를 유혹해 성매매에 빠뜨리는지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한 달 새 DJ들에게 300만원 넘게 송금한 10대부터, 성범죄를 당하고도 또 놀이기구를 타러 오는 여중생까지. 현실은 생각보다 참담했습니다.첫 보도 후,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딸도 같은 피해를 당한 것 같다는 학부모, 이
[이달의 기자상]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는 일하는 사람이 입는 옷, 작업복에 주목한 기획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데 씁니다. 우리의 일상은 서로가 하는 노동에 조금씩 의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노동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작업복을 떠올렸습니다.기획에서는 작업복의 범위를 옷뿐 아니라 일할 때 몸에 붙어있는 모든 것으로 넓혔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은 유니폼이라고 불리지만, 서비스업이라는 노동에 조금 더 주목하게 하고 싶어 일부러 작업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작업복
[이달의 기자상] 2023 비수급 빈곤 리포트
우선 여러 훌륭한 후보작 가운데 서울신문의 2023 비수급 빈곤 리포트에 영예를 주신 한국기자협회와 심사위원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기획은 질병과 생활고 속에서도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1년 전 스러져 간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되돌아보며, 이들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배제된 또 다른 세 모녀들을 찾아 시작됐습니다.사회부와 전국부 기자 13명으로 된 특별기획취재팀은 이들 같은 비(非)수급 빈곤층을 낳는 애매한 기준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점, 개선방안을 종합적으로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취재팀은 4월부터 7월까지 약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