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신뢰와 커뮤니케이션 비용
명예훼손 판결을 보면 사회적 승인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그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훼손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맥락에서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승인해 준다는 건 어떤 말이나 행동, 일을 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기본적으로 사회적 승인이 없으면 신뢰를 전제로 하는 일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워낙 엉터리 전화 사기가 횡행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가 찍히면 전화를
트럼프에게 무엇을 내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이미 벌어진 잘못의 진상을 밝혀, 다시금 비슷한 잘못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다. 특정한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을 어떻게 취재하느냐고, 도대체 어떤 팩트를 건져내야 그런 예방적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현장에서 터져 나올 듯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사건사고는 표면적이지만, 그 이면에 계속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있고, 그것을 저널리즘 문법에 맞게 표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뿐이다. 대개는…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법원이 지난 10월부터 2인으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계속 내놓고 있다. 특히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법원의 판단을 이해하기 위해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추천한 2인에다 국회가 추천한 3명(여당 1명, 야당 2명)을 더해 총 5명의 상임위원으로 이루어진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5명의 상임위원에게 분산해 놓은 구조다.행정과 관련해 이런 결정구조를 가진 조직을 합의제 행정기관이라고 부른다.…
풍자, 스스로 성역이 되어선 곤란하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는 말이 이번에도 등장했다. SNL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국정감사장을 찾은 뉴진스 멤버 팜하니를 패러디했다가 논란이 일자 나온 말이다. 또다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19일,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6 김의성 편에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날 방송에서 김의성씨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정인섭 사장으로 분했다. 정인섭 사장이 국회 환노위에 출석한 이유는 뭔가. 올해만 노동자 5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정인섭 사장이 본인의 뒷좌
딥페이크 성범죄 보도와 장기적 책무
8월부터 딥페이크 성범죄, 즉 성폭력특별법 제14조의 2항 허위영상물등의 반포죄가 온라인 공간에서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여성 청소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집중 보도되기 시작했다. 현행법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유포되었을 때에만 처벌하고 있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범죄 예방도 어려워진다는 여론에 따라 법 개정 역시 이루어졌다. 그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제기된 것이 처벌 조항의 개정이었기에,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정부에서도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결이 이루어지면서 딥페이크
"그래서 기자를 하고 싶은 학생 없나요?"
전공생 진로 탐색 특강을 위해 기자 출신의 강사분을 초청한 적이 있다.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셔서 그런지 전공 분야 전반의 직무와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짧은 특강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수줍어하는 학생들을 대신해 내가 던진 질문이 있었다. 만약 자제분이 미디어 관련 전공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잠시 당황하던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미 아이들한테 아빠는 공대 가는 거 아니면 등록금 대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이번 학기에 담당하는 수업 중 하나는 저학년을 위한 개론 수업이
'먹을 수 있는 여자'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의 주인공 메리언 매켈핀은 먹는 것을 거부한다.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인 메리언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설문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괜찮은 외모의 남성 피터로부터 당신만큼 현명한 여자는 없다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피터의 청혼 이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메리언이 노력하면 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달
'익명 사회' 길목서 벌어지는 신상공개 논란
살인 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아파트 흡연장에서 만난 주민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의 신상은 공개됐지만 일본도로 주민을 살해한 30대 남성은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살해 피의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서울경찰청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의 유족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봤다.피의자 신상공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본도 살해 사건 기사에는 범행 동기가 공익이라며 범죄를 옹호하는 댓글이 달려 충격
언론이 무서워 정당을 이렇게 운영하다니
한국의 정당들은 지난 20년간 법을 제대로 지키며 운영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정당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알고 있으나, 언론이 무서워서 혹은 언론이 만들어낼 여론이 무서워서 이 상태를 방치한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현행 정당법 제30조에는 정당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법률에선 정당의 유급사무직원수 제한이란 표현을 쓴다. 이 법률의 1항은 정당에 둘 수 있는 유급사무직원은 중앙당에는 100명을 초과할 수 없으며, 시도당에는 총 100인 이내에서 각 시도당별로 중앙당이 정한다이다. 일
언론과 권력의 거리
8월21일 미디어오늘이 현직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이 친분 있는 여성 기자들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성희롱 대화를 일삼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이미 최소 3명이고, 그 대화 내용은 지면에 옮기기 난감할 정도다.특히 핵심 권력기관의 직원과 유력 언론기관의 고위직을 담당한 이들이 타인의 사진을 아무런 허락 없이 사용하고, 자신들의 성적 만족감을 위해 성적 희롱과 모욕을 가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행위다.더하여 이번 사건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 일이 언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