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머슴편지(헌혈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4-07-28 09:22:49
휴가 계획은 잘 짜고 계신지요? 아님, 아직 계획조차 못 세우거나, 이미 보내고 내년 휴가를 기다리고 있으신지요?

모처럼 훌훌 털고 재충전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 채우길 기대

합니다.


기자협회는 창립 40돌을 기념해 헌혈증서 모으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

다. 우리의 소중한 피가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좀 밝히기 쑥스러운 일이지만 저는 지금까지 모두

18번 헌혈을 했지요.


첫 경험은 79년 12월 24일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상황 기억나시죠?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긴급조치는 해제됐지만 12.12 군부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사

회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던 때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천호동 네거

리를 지나다 헌혈 차에 붙들린 겁니다.


학생 헌혈하고 가세요” “...” “아저씨 0형 피가 모자라요, 한번

하세요” 그때 퍼뜩 성탄절 이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피라도 선물하

자’는 생각에 순순히 헌혈 차에 올라 피를 뽑았던 겁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길에 들면 그다지 망설여지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습

니다. 이후 지금껏 1년에 한 두 차례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91년부턴 무

려 7년 간 단 한번도 안한 걸로 나타나더군요. 최근엔 지난 7월 21일 18번째

로 했지요.


제 헌혈 기록을 확인해보니 86년 이후 것이 남아 있더군요. 1986-09-26,

1987-01-08, 1989-12-01, 1990-12-07, 1991-11-22, 1998-08-11, 1999-

05024, 2000-07-19, 2001-06001, 2001-12-18, 2002-04-24, 2003-02-26,

2003-05-06, 2003-10-04 등이 제가 헌혈한 날짜입니다.


그 날짜들을 들여다보니 그 날 언저리가 어렴풋 떠오릅니다. 이 가운데는

예비군 훈련 갔다가 일찍 귀가시켜주는 ‘혜택’ 받으려고 한 것도 있습니

다. 어떤 때는 몸이 안 좋아 ‘공짜로 건강 검진하는 마음으로’ 한 경우도

있지요. 집으로 배달된 헌혈 결과서를 열어보는 그 스릴이란...


주사바늘이 들어갈 때 아프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바늘

을 뚫어져라 째려보는 겁니다. 그러면 기가 질려서인지 통증이 덜하더라구

요.


제가 헌혈 홍보대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이번 헌혈 증서 모으기

에 많은 분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야기가 제법 길어졌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승헌 변호사님이 최근 내신 <민산객담>에 있는 두어 대목 소

개하고 글 맺을까 합니다. 더위에 식욕, 의욕 절대 잃지 마세요!


< 택시를 타고 가던 한 아주머니가 잠시 혼미해져서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내가 어디로 가자고 했죠?” 그러자 운전기사 입에서 떨어진 말, “어, 아

줌마 어디서 탔지요?” > (‘건망증’ 2002년 8월 <책과 인생>)


< 건국대 유일상 교수는 중대 신방과 대학원 사무실에서 매주 한번씩 반갑게

만난다. 며칠 전 저서 한 권을 기증 받았다. ‘벌거벗은 한국 언론’이란

책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아울러 책의 장정이


우선 맘에 든다고 했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책표지가 좀 어

둡지 않아요?” “그야 한국 언론 자체가 아직도 어둠침침하니까 책표지도

그러해야 맞지요” > (‘얼룩’ 90년 6월 <다리>)



2004년 7월 27일 이 상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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