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그러니까 그게 2000년이다. 영국 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하고, 그때만 해도 미소년의 풍모를 고스란히 간직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비치>(The Beach)가 관객들과 만났다.
이상주의자인 미국 청년을 연기한 ‘레오’는 갑갑한 일상과 현실에서 훌쩍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 배낭 꾸려 여행을 떠난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태국의 방콕. 첫날 묵은 숙소는 국적 다양한 젊은이들이 벌떼처럼 모여드는 카오산로드(Khaosan Road)에 있었다.
거기서 무슨 환상이나 꿈처럼 코브라의 독이 섞인 싸구려 위스키를 마시고, 휘청대며 길거리를 헤매다가 “이 나라엔 아무도 모르는 파라다이스 같은 섬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는 거길 가보기로 하는데….
방콕 카오산로드가 ‘배낭여행자의 해방구’로 떠오른 건 1970~1980년대부터다. 유럽과 북미의 청년 모험가들은 카오산로드를 근거지로 삼아 인근 국가인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으로 향하는 기차나 버스, 혹은 배에 올랐다.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얻고,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당시만 해도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는 다른 시대를 사는 것처럼 정치·경제·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비치>가 개봉한 21세기 벽두 즈음엔 적지 않은 한국 배낭여행자들도 카오산로드에 익숙해져 있었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은 한 달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태국행 비행기를 탔고,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는 청년들 역시 머리도 식힐 겸 한국을 떠나 1~2개월 동안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여행자’가 되는 걸 선택하곤 했다.
나 또한 30대와 40대에 걸쳐 네댓 번 태국과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국경을 무시로 넘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저렴한 항공권이나 버스표, 승선권이나 기차표를 카오산로드에서 구입했다. 물론 숙소도 한국 돈 1만원 정도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그곳에 잡았다. ‘레오’처럼 용감하고 무모하게 코브라의 독이 섞인 위스키를 마시진 못했지만.
20년 전쯤엔 카오산로드를 빛나게 만드는 ‘청춘의 열기’가 너무 좋았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에서 온 20대들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거리에서 파는 1~2천원짜리 볶음국수를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보다 맛있게 먹었다. 남들 눈치 따위 보지 않는 그런 ‘시크함’이 부럽기도 했다.
주목받기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길거리에서 튀겨 파는 전갈이나 커다란 애벌레를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호기롭게 삼켰다. 무슨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어쨌건 2000년대 초반 카오산로드는 흥미롭고, 유쾌하고, 신명 나는 곳이 분명했다. 내가 아직은 젊었을 때였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그리고,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지난 5월3일. 50대 중반을 넘겨 후반으로 가고 있는 사내가 거의 10년 만에 태국을 찾았다. 취재를 위한 짧은 여행이었으니 커다란 배낭도 여벌의 옷도 필요 없었다.
옛날 같으면 하지 않았을 짓을 했다. 비행기가 자정을 넘겨 방콕에 도착한다는 핑계로 호텔 픽업을 예약했고, 숙소 역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시끄러운 카오산로드 중심가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잡았다.
여행 중 하루는 ‘그 시절 젊은 기분’을 다시 한번 내보고 싶어 해가 진 카오산로드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뭔가? 겨우 테킬라 서너 잔에 취기와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밤 10시도 되기 전 젊은 친구들로 흥청대는 술집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날 밤. 내가 맛보던 카오산로드에서의 해방감은 이제 청춘들에게 넘겨줘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다.
조금은 서글퍼진 감정으로 터덜터덜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족발덮밥을 파는 노점이 보였다. 태국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
한 그릇 주문하고는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부드럽게 잘 익은 껍질과 향신료 냄새 밴 살과 비계까지 듬뿍 떠서 한 입 먹으니….
아, 청년은 중년으로 변했어도 카오산로드 족발덮밥의 맛은 20년 전 그대로였다. 저만치서 늙지도 않는 태국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나와는 무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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