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마다 사투리 다 달라"… 니카라과로 날아간 30년차 기자

[김성후의 The Journalist]
(14) '다큐 40여편 제작' 진재운 KNN 기자

진재운 KNN 기자의 신작 다큐멘터리 ‘나무의 노래’는 중남미 니카라과 밀림에서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이 여성을 진 기자가 처음 만난 건 2024년 6월 초,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였다. 20대 초반 미국으로 갔다가 반세기 만에 한시 귀국한 그녀는 통도사를 보고 싶어 했고 진 기자는 안내를 맡았다. 절의 경내를 거닐다 그녀가 던진 말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질지 그땐 몰랐다. “진 감독은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 다른 것 알아요?”

1월23일 서울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진재운 KNN 기자가 신작 다큐멘터리 ‘나무의 노래’ 시사회를 마치고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그녀의 이 말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렇지 않아도 니카라과에 서울 여의도의 7배가 넘는 땅을 사들여 나무를 심는 분이라고 하던데, 나무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나무를 소재로 한 다큐 영화를 시리즈로 제작하길 원했던 진 기자는 그녀를 놓칠 수 없었다. 24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대 대학원에서 생물유전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에서 암 연구를 하던 과학자가 뜻밖의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모은 성공 신화는 촉매제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1987년 1월30일자 뉴욕타임스 기사(Condominium activity in East Harlem)는 흥미로웠다. 진 기자가 찾은 그 기사엔 당시 미국 뉴욕 이스트 할렘 지역의 부동산 변화, 특히 낡은 학교 건물을 고급 콘도로 개조해 분양에 성공한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실렸다. “지금까지 심은 나무가 70만~80만 그루가 넘는다는 사연과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고 그냥 흘려보내는 건 기자가 아니잖아요. 무조건 취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무 이야기만 찍기로 하고 촬영
다큐를 찍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거절했다. 1939년생인 그녀의 나이는 88세. 40여년 전 뉴욕타임스 기자한테 그랬듯이 “나를 알리는 건 안 돼요”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순순히 수긍할 순 없었다. 지난해 3월, 진 기자는 니카라과로 날아갔다. “세상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알리는 게 제 일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나 배경 등은 알려고 하지 말고 나무 이야기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됐다.


진 기자는 3월과 7월 각각 한 달씩 니카라과 밀림에서 나무를 심고 돌보는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9월엔 미국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진 기자는 나무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한 여인의 서사를 지금껏 본 적 없는 플롯과 내러티브로 끌어냈다. 무엇보다 영상 편집에 공을 들였다. 그는 편집 작업을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음력 10월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석 달간 바깥 출입을 끊고 수도하는 스님처럼 그는 오롯이 편집에 몰두했다.

2011년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촬영차 찾은 미국 알래스카. 광활한 툰드라 지대 촬영을 위해 헬기를 탔다. /진재운 제공

“저만 아는 눈이 있거든요. 촬영할 때마다 있었으니까. 제 머릿속에 들어 있으니 계속 떠오르는 지점이 있습니다. 편집이 잘 안될 때도 많죠. 손을 놓고 의자 뒤로 등을 기대면 싹 스며드는 뭔가가 있습니다. 70TB(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을 121분짜리로 편집하는데 석 달 열흘, 거의 100일 정도 걸렸어요. 너무 고독한 작업이죠. 근데 외롭지만 매력이 있어요.” 진 기자는 느린 호흡으로, 되도록 롱컷으로 편집해 ‘나무의 노래’를 완성했다. 내레이션은 작사가 김이나씨, 해외 배급용 번역은 영화 ‘기생충’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 맡았다.


‘나무의 노래’는 1월23일 오후 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서울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 2관에서 관객 400여명이 영화를 관람하고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시사회에 앞서 진 기자를 만났다. 그는 “나무의 말을 듣고, 나무와 대화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말 없는 침묵으로 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시간에 휩쓸리면서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살거든요. 원래 가진 것조차 잃어버리고 있는데 이 분은 그걸 우리에게 떠올려 줍니다.”

◇30년 전, 15분짜리 미니다큐로 데뷔
진 기자가 지금까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40여편. 대부분 자연·생태·환경을 다뤘고 역사와 인물에 좀 더 천착한 작품도 있다. 일부 다큐멘터리는 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했다. ‘나무의 노래’는 ‘위대한 비행’(2012년), ‘물의 기억’(2019년),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2022년), ‘무경계’(2023년),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2025년)에 이은 진 기자의 6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전에는 영화 장르를 생각하지 않았다가 극장에서 보는 집중도의 매력이 있다고 판단해 ‘위대한 비행’ 이후 영화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 다큐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KNN 전신 PSB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3년차인 1997년 연중 기획보도 제작에 참여하며 다큐에 입문했다. 15분짜리 미니 다큐멘터리 ‘물은 생명입니다’ 20편을 제작하고, ‘적조 그 죽음의 물결’에 조연출로 참여하더니 1997년 ‘초록빛으로 숨죽인 강’으로 첫 장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했다. “다큐는 내가 기획해서 내가 편집하고 내 색깔을 넣을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거기다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다 보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사실은 푹 빠진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 ‘물의 기억’, ‘무경계’ 포스터. /진재운 제공

사실 그가 다큐에 관심을 기울인 데에는 다른 사연도 있었다. 패기만만하던 1년차, 경남 김해의 건설현장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를 취재했다. 한 건설회사가 공사하면서 파놓은 웅덩이에 유치원생이 빠져 죽은 사건이었다. 장마철인데 아무런 안전장치를 하지 않고 웅덩이를 방치하면서 일어난 인재였다. 그가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취재한 기사는 뉴스로 나가지 못했다. 이유는 황당했다. 건설회사 경영진과 친척인 보도국 간부가 압력을 넣은 것이다. “그때 27살이었는데, 이해가 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선배들도 별말이 없는 거예요. 기자 생활 막 시작하던 때라 실망감이 더 컸어요. 방송국 개국하고 저의 첫 기사였습니다.”


그는 취재기자를 하면서도 다큐 제작을 멈출 수 없었다. 관건은 시간과 예산이었다. 아이템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제작비는 외부 지원을 받아 조달했지만, 취재기자가 다큐멘터리만 붙들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1년은 기자로 뛰고, 1년은 프로듀서로 일했다. 메인 뉴스를 진행하다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발동이 걸려 앵커를 그만두기도 했다. “왜 니만 하노?”라는 시선이 따라왔다. 그것도 잠시였다. 그의 다큐가 작품성을 인정 받아 세계영화제 초청과 수상이 이어지고, 각종 대외 수상이 더해지며 KNN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다. 한국방송대상 8회, 이달의 기자상 6회, 뉴욕페스티벌 최고 연출상 등 60회가 넘는 국내외 수상 기록을 쓰고 있다.


그는 “한 번 시동이 걸린 다큐 제작을 멈출 수 없었다”면서 “회사도, 저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고 했다. 뉴스룸 내부의 역학 관계에서 그가 일하는 방식은 예외임이 분명하다. “저도 충분히 압니다. 그런데 역학 관계에 안주해 버리면 아무 일도 못 하죠. 울산MBC의 설태주 기자처럼 욕심 있고 애정 있는 후배들이 고민을 전해 와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생각하면 질러라! 좌고우면하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뒤로 가면 후회한다.’ 조직을 파괴하거나 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질러야 해요. 욕심을 부리지 않은 사람한테는 의미가 없어요. 제 나름대로 그렇게 위로하는 거죠.”

◇다큐 작업은 긴 기다림의 산물
진 기자에게 다큐 작업은 오랜 시간 자신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인내력의 산물이었다. 영하 속 추위에서 무한히 기다려야 하고,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고생이 있어야 원하는 이야기와 영상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은 1년에 3만km를 이동하는 큰뒷부리도요새의 여정을 뉴질랜드에서 한반도, 몽골, 미국 알래스카까지 따라다니며 담아낸 작품이다. 이 다큐의 압권은 도요새 무리가 갯벌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그는 2~3초짜리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추운 갯벌에서 장장 8시간을 기다렸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다리다 망원 렌즈에 잡힌 도요새의 눈빛을 봤어요. 순간적으로 눈빛이 바뀌더라고요. 이놈들이 날아오르리라는 걸 알았죠.”

2002년 다큐 ‘해파리의 침공’ 수중 촬영 장면. 남태평양 팔라우. /진재운 제공

한반도 국립공원의 비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무경계’는 ‘한반도의 보석 국립공원’이라는 KNN 3부작 TV다큐멘터리를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특수한 기법을 동원한 수려한 영상미로 호평을 받은 ‘무경계’는 구름이 산과 산을 타고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구름의 움직임을 촬영하기 위해 설악산 5번, 소백산을 4번 올랐고, 소백산 촬영 마지막 날 구름이 파도가 치는 장면을 극적으로 담아냈다. “정상 부근에 안개가 쫙 깔려 있어 ‘안 되는구나’ 포기하려고 했어요. 근데 아쉽잖아요. 마지막으로 드론을 띄웠는데,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불과 2m 위에 엄청난 운해가 펼쳐져 있는 거예요.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렸더니 하늘이 열렸어요.” 그는 “이런 장면을 잡아내면 희열을 느낀다”면서 “그런 순간을 경험하면 로또 당첨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선물같은 장면들이 그냥 주어지는 건 아니다. 위험을 수십 번 마주하고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다. 2011년 8~9월쯤, 알래스카의 광활한 툰드라 지대를 촬영할 때였다. 드론이 없던 시절이라 항공 촬영을 위해 헬기를 빌려서 탔다. 시야가 무한대로 펼쳐진 툰드라 촬영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그런데 맑은 하늘에 갑자기 폭우가 몰아치면서 대낮인데도 사방이 시커멓게 어두워졌다. 옆에 앉은 파일럿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됐고 조종간을 잡은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소형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려 영상 유언을 남겼다. “그때까지 전 세계에서 도요새가 서식하는 툰드라 지대를 촬영하겠다고 헬기로 도전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중에 그곳 학자들이 전해주더군요.” ‘위대한 비행’ 촬영 도중 알래스카 말고도 몽골, 뉴질랜드에서도 유언장을 썼다.

◇“다큐로 질문 던지는 게 내 일”
1997년 15분짜리 제작물로 맺은 다큐멘터리와 인연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원동력은 무엇일까. 특별하지 않다. 굳이 말한다면 관심이 있고 없고 차이라고 했다. “저 같은 경우는 차를 타고 가다 습지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감동을 받아요. 이상하게 그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똑같은 곳을 지나는데, 도로를 놓는다고 습지를 메우고 그러거든요. 그런 것들이 너무 불편한 거죠.” 그는 “보도 특집이나 다큐를 통해 ‘꼭 이래야만 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생태·환경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기후 위기를 다루는 영화제를 기획한 배경이기도 했다. 2013년 국제 조류 영화 페스티벌인 프랑스 ‘메니구트 영화제’에 초청됐다가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환경영화제를 구상했다. 영화제 콘셉트는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과 논의를 통해 기후 위기로 잡았다. 부산시에서 예산을 확보하고 사단법인 ‘자연의 권리찾기’를 결성해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라는 이름의 영화제를 창립했다. 진 기자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2022년 시작한 영화제는 올해로 5회를 맞는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그를 ‘진 감독’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 정체성을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그렇게 부르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취재력은 기자만의 강점이죠.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설득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뚫고 나가죠.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입니다.” 차기작에 대해 묻자 그는 손사래로 대신했다. 지금은 ‘나무의 노래’ 개봉과 세계의 여러 영화제 출품에 여념이 없단다. 개봉은 영화관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누리는 공동체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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