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와 헤어질 결심' BBC와 유튜브 '딜'에 숨은 의미

BBC, 2030년대 지상파 중단 검토... 유튜브와 전략적 파트너십
플랫폼 장악력 대신 콘텐츠 영향력 선택?… 한국 방송계에도 시사점

영국 공영방송 BBC가 최근 유튜브와 맺은 새 전략적 파트너십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22년부터 BBC는 지상파 송출 중단(2030년대)을 검토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대표적 레거시 언론과 빅테크의 이번 협업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상징이라 할 해외 방송사의 결정을 두고 국내 현업 종사자와 미디어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역할과 미래 대응,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거버넌스 및 제도 설계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을 내놓고 있다.

BBC는 1월21일 유튜브와 맺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BBC 홈페이지

BBC 그룹은 1월21일 유튜브와 맺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개했다. BBC는 이번 협업을 “‘모두를 위한 가치’(Value for All) 전략의 일환으로, 모든 시청자가 어디서든 더 많은 BBC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소개하며 큰 틀에서 △유튜브 전용 신규프로그램 투자 △유튜브에서 영국을 하나로 모으는 더 많은 BBC의 순간들을 부각하기 위한 협력 △영국 전역에서 차세대 크리에이터 및 프로듀서들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기존 아이플레이어(iPlayer)나 사운즈(Sounds) 등 대성공을 거둔 서비스가 있었지만 시청자에게 더 도달하기 위한 차원임을 BBC는 분명히 하며, 향후 협업에서 집중할 영역에 대해 △영국 어린이 및 청소년 대상 맞춤형 커뮤니티 구축 △핵심 BBC 프로그램 브랜드 홍보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뉴스 제공 △글로벌 팬덤을 통한 상업적 성장 촉진 등을 구체적으로 꼽았다. 아울러 정부의 ‘창조산업 부문 계획’(Creative Industries Sector Plan)에 대한 지원, 국립영화텔레비전학교(NFTS) 주관 150명 미디어 전문가의 유튜브 역량 개발 프로그램 운영 등을 예정하고 있다고도 BBC는 설명했다.

팀 데이비(Tim Davie) BBC 사장은 “모든 사람이 BBC로부터 가치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번 파트너십은 새 방식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탄탄한 출발선에 서 있고, 이는 시청자가 유튜브에서 원하는 포맷의 과감한 콘텐츠, 영국 전역의 차세대 유튜브 크리에이터 양성을 위한 전례 없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파트너십은 2022년 데이비 사장이 “BBC는 향후 10년 내 온라인 전용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기존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을 중단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나온 행보다. 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의 관련 기사에 따르면 데이비 사장은 BBC는 방송에 전념하겠지만 영국인들은 2030년대까지 많은 독립 채널과 라디오방송국의 폐쇄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전통적인 방송에 대한 포기가 BBC를 온라인에서 또 하나의 콘텐츠 제공업자로 전락할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방송 중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우리는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계획해야 한다”고도 했다.

근간엔 매달 수천만명 영국인에게 도달하지만 거의 모든 매체의 시청자수가 장기적인 감소세를 보이는 현실이 있었다. 전통적인 TV 시청자 수는 노인층에서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BBC1의 평균 시청자 연령은 60대이고, 젊은 층은 완전히 이탈하는 게 대표적이다. 데이비 사장은 온라인 전용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면서도 “수백만명의 영국인, 특히 고령층, 저소득층, 농촌 지역 거주자들이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을 갖추지 못해 온라인 전용 BBC에서 소외될 수 있는 점이 과제”라고 했다.

‘무엇이 TV인가’ 근본적 질문, 한국에도 시사점

KBS 이사를 역임한 김경달 더코어 대표는 <BBC의 ‘유튜브 퍼스트’ 선언: 공영방송의 항복인가, 진화인가?>란 기사를 통해 이번 결정이 홍보수단이던 유튜브를 BBC가 ‘제1의 본방송 무대’로 격상시킨 전략적 변곡점으로 평가했다. 특히 결정적인 트리거로 시청률 데이터를 꼽았다. 영국 시청률 조사기관 바브(Barb)의 통계를 인용, “지난해 12월 영국 내 유튜브 도달률(5190만명)이 사상 처음으로 BBC의 모든 채널을 합친 도달률(5080만명)을 추월했다”는 설명이다.

팀 데이비 BBC 사장이 2022년 12월 왕립TV협회 강연에서 '인터넷 온리'(internet-only) BBC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립TV협회 유튜브

김 대표는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꽤 심각하다.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인 ‘보편적 접근성’이 무너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16~24세 시청자들에게 BBC는 더 이상 ‘필수재’가 아니다. (중략) 그들의 놀이터인 유튜브에 깃발을 꼽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게 BBC는 존재하지 않는 방송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따라 과거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시청자를 BBC 플랫폼인 아이플레이어로 유인했던 전략이 유튜브 자체를 목적지로 두는 것으로 변화했다고도 분석했다. 기존 방송 클립을 잘라 유튜브에 올렸던 ‘재활용’ 수준 콘텐츠가 기획 단계부터 유튜브 문법에 맞춘 ‘오리지널’로 제작되는 지점도 거론했다. 그 외 “2026년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주요 콘텐츠가 BBC 플랫폼과 유튜브에 동시 공개”되고, “영국 내 시청자에겐 광고없이 콘텐츠를 제공해 수신료 가치를 지키되 영국 외 해외시청자에겐 광고를 노출해 수익을 창출”하는 이중 계획, “영국 크리에이터 경제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육성 프로그램 등을 주요 변화로 언급했다.

김 대표는 “BBC의 이번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이 TV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의 TV가 거실에 놓인 수상기와 편성표를 의미했다면, AI 시대의 TV는 ‘IP(지식재산권)가 소비되는 모든 접점’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플랫폼 장악력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콘텐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생존에 더 시급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BBC의 고민이 한국 공영방송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플랫폼 고립주의’ 탈피 △고품질의 ‘디지털 오리지널 명작’ 기획 △‘데이터 실리’를 챙기는 협상 등을 KBS에 제언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BBC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레거시 미디어와 빅테크의 공생 모델이 되겠지만, 실패한다면 공영방송이 콘텐츠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2026년의 BBC는 다시 한 번 벼랑 끝 전술을 택했다. 이제 한국의 미디어업계와 KBS가 BBC의 이 무거운 실험을 지켜보며, 우리만의 해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BBC 사례, ‘영국 정부-규제기관-공영방송’ 2인 3각을 봐야

조영신 동국대 대우교수 겸 미디어연구소 C&X 대표는 3일 브런치에 올린 글 <안테나의 종말과 콘텐츠의 생존>을 통해 이번 행보가 지상파 방송계에 시사하는 바를 전했다. 그는 “기존의 주파수 중심으로 BBC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냐란 질문(2022년)이 내부에서부터 나왔고, 규제 당국이 이를 받아 규제 환경을 조정(2024년)해 주었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BBC는 자신의 콘텐츠 우월함을 내세워 남들과는 다른 압도적 계약(2026년)을 유튜브와 했다. 이른바 랜드마크 딜이라고 일컬어지는 최근의 계약”이라며 이 맥락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와 공영방송의 생존을 위한 합심, 면밀한 설계 과정을 중히 봐야한다는 시선이다. 2022년 팀 데이비 BBC 사장이 2030년대 지상파 송출 중단을 예고한 후 BBC는 전파를 쏘는 방송사로 남지 않고 인터넷 기반 디지털퍼스트 미디어 조직으로 재편을 위해 지속 움직여 왔다. 교양채널 BBC4와 어린이채널 CBBC를 온라인 전환하겠다고 한 뒤 2027년 중단을 앞두고 있고, 2023년부터 로컬 라디오 AM 송출을 순차적으로 중단해 디지털라디오나 앱 청취를 유도하고 있는 게 현재다. 아직 지상파 송출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는 2034년 주파수 이용 완료 시점을 앞두고 올해 안에 BBC의 지상파 중단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영국 미디어규제 당국 오프콤이 2024년 내놓은 <TV전송의 미래> 보고서 첫페이지.

이후 미디어규제 당국 오프콤(OfCom)은 2024년 <TV전송의 미래>(The Future of TV Distribution)란 보고서를 내놨다. 조 대표는 “BBC의 선언이 ‘의지’였다면, 오프콤은 이를 증거로 뒷받침한 것”이라 평가했다. 오프콤은 보고서에서 시청자는 인터넷으로 이동하는데 방송사는 지상파 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동시에 부담하고 있다며 “시청 점유율이 계속 하락해 지상파 송출의 비용 대비 편익이 무너지는 순간, 즉 ‘임계점’이 2030년대 중반에 도달할 것임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보편적 인터넷 접근권을 전제로 한 송출 완전 중단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봤다.

고민은 인터넷 시장으로 간 BBC가 어떻게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냐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보편적 접근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BBC는 공영방송으로서 가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2024년 영국 의회는 방송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한 ‘미디어법’(MediaAct 2024)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핵심은 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BBC의 노출 확보였다. 지상파 시대 채널 1번이란 BBC의 기득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스마트TV 환경에서 법안은 TV제조사와 플랫폼 사업자 등에 스마트TV 홈 화면 최상단, 즉 시청자 눈길이 가장 잘 닿는 ‘골든 존’에 공영방송 앱 배치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했다.

조 대표는 “약육강식의 전쟁터인 디지털 시장에서도 공영방송이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준 것”이라며 “입법을 통해 정부가 인터넷 시장에서도 공영방송이 우선권을 확보할 수 있게 보장해 주었다. (중략) 본진(TV)이 안전해지자, BBC는 더 과감한 외부 확장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결과 외부확장 시도가 가능해진 BBC가 유튜브와 이번 계약을 체결했다는 게 조 대표의 관점이다. 조 대표는 “이번 딜은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키로 한 것뿐, 절대 유튜브 퍼스트가 아니다”란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BBC가 일반 사업자의 콘텐츠 공급 계약 수준을 넘어 “자사 콘텐츠의 우월성을 레버리지 삼아 많은 부분에서 유튜브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봤다.

통상적으로 유튜브 내 광고영업은 구글이 독점해왔지만 이번 딜에선 BBC 자회사가 직접 광고 영업권과 스폰서십 판매권을 갖는다. 유튜브 생태계 안에서도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 수익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 BBC는 “알고리즘 노출 우대”, “잃어버린 세대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 마련”, “데이터 접근권”을 얻었고, 유튜브는 “세계적인 명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해 “저널리즘 플랫폼으로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획득”했다는 평가다.

조 대표는 “정부와 규제기관, 그리고 공영방송이 서로 짜고 치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는 모습”이라며 방송사 경영진, 규제기관, 정부와 의회 간 일종의 2인3각을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의 미디어 정책은 여전히 ‘지상파 사수’라는 낡은 도그마에 갇혀 있다”며 “시장은 규제기관 탓을 하고, 규제기관은 시장 탓을 한다. 시장을 방치하는 것은 자율이 아니라 방임이다. 지금이라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노력을 민관이 같이 했으면 한다”고 했다.

영국이 하니까 우리도?…공영방송 왜 필요한지부터 답해야

이 같은 BBC 행보에서 중요한 지점은 유튜브와 파트너십 체결이란 결과 자체가 아니다. KBS 이사를 지냈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9일 경향신문 기고 <BBC 지상파 중단 계획과 보편적 서비스>를 통해 이번 BBC의 결정을 두고 “영국이 저러니, 우리도 그러자”라는 식의 단선적 처방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왜 이 사회에 공영방송이 필요한지, 근본적 의문부터 답해야” 하고, “공정성과 신뢰 등 그간 쌓인 문제들에 새로운 고민이 더해지는 무게를 견뎌내”지 않고서는 “유럽 토양에서 숙고 끝에 만든 결과만을 다급히 ‘이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9일자 미디어세상 칼럼.

지난 100여년간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를 이루는 중요 수단이었고, 한 국가 내에서 거주지역, 소득, 연령 등과 무관하게 합리적 비용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초 인프라가 ‘지상파’였음을 강조하며 강 교수는 “시청 행태 변화에 맞춰 지상파를 중단하고 인터넷만 남기는 게 서비스 원칙에 맞을 때가 올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수를 희생한다면 자가당착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BBC도 정부에 보낸 문서에서 “전환 과정에서 어떤 이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밝혔고 한국에선 안테나로 6개 지상파만 보는 가구가 3%인 반면, 영국은 지상파 채널 100여개 시청이 가능하고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도 11%에 달하는 등 현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공영방송의 정체성 자체가 95%를 위해 5%를 희생하는 공리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며 “가시청가구 기준을 90%로 정해 이를 충족한 유료 채널 JTBC 가입자 외에는 동계올림픽을 볼 수 없는 바로 지금의 한국과 대비해보자”고도 했다. 공영방송의 유튜브 활용에 대해서도 “단순하지 않다. 보편적 서비스를 위해 젊은 시청층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상업적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공영방송이 클릭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플랫폼에 의존하는 것은 모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면이 공영방송에 결정적 시점일 수 있음을 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큰 환경 변화가 기회의 공간을 잠시 열어줄 때가 있다”면서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기간 KBS 리더십 등이 계기를 살리지 못한 실책을 언급했다. 강 교수는 “곧 다시 한번 기회가 올 것이다. 정부와 공영방송은 이번엔 그간 방치된 ‘오래된 미래’를 올바로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통합미디어법 ‘규제 형평’ 아닌 ‘공공성의 제도적 재구성’ 중심 돼야

이 같은 지적은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통합미디어법’ 논의와 불가피하게 맞닿는다. 2000년 제정된 통합방송법은 시장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OTT 등 뉴미디어를 포섭하지 못해 왔는데, 현재 국회에선 이를 아울러 ‘시청각미디어’란 개념으로 지칭한 통합미디어법의 연구반을 구성하고 규율 범위, 분류체계, 제도 개편 등을 담은 초안을 1월26일 발표한 상태다. 다만 한국 현실에 맞는 논의를 위해선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철학과 방향에 대한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장열 국립부경대 교수의 6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이슈세미나 발제 <통합미디어법 논의의 정지경제학>에 담긴,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의 구조.

6일 윤장열 부경대 교수는 한국언론정보학회 이슈세미나 발제 <통합미디어법 논의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유럽연합과 독일의 관련 논의와 국내 현실을 비교했다. 윤 교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직속 통합미디어법 TF가 내놓은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초안에 대해 이날 발제문에서 “법안은 산업 진흥과 규제 형평성이라는 정책적 목표에 집중하는 반면, 미디어 규제의 근본적 목적과 공공성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유보되어 있다”, “기존 방송법 체제의 구분을 상당 부분 유지한 채 새로운 플랫폼을 시장영역에 배치함으로써, 구조적 권력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대해서도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지배력과 데이터 통제력을 가진 행위자와 그렇지 않은 행위자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공영방송이나 중소 미디어 사업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규제 부담을 전가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미디어국가협약(MStV) 등 사례를 분석한 윤 교수는 “전송 기술이나 사업자 유형을 기준으로 규제를 구분하지 않고, 여론 형성에 미치는 기능과 사회적 영향력을 규율의 핵심 기준으로 설정”한 지점을 의미있게 봤다. 또 2020년부터 2025년 3월까지 총 7차례 개정을 거치며 플랫폼 규제, 알고리즘 투명성, 차별금지 원칙, 공영방송 책무 재조정, 디지털서비스 영역의 공공성 강화, 감독기구의 권한 등이 단계적으로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연속적 개정은 미디어국가협약이 고정된 규범이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 질서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적 법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가 이날 발제에서 제시한 통합미디어법안 구조.

내용적으론 미디어국가협약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을 명확히 다른 역할과 시장 논리로 배치”한 측면이 강조됐다. “민영방송은 시장 경쟁을 통해 콘텐츠 다양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주체로 이해되며, 광고와 구독 등 상업적 수익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공영방송은 시장 경쟁의 한 행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공론장 인프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공영방송 주체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있고, 임무 규정 역시 매우 상세해 한국 방송법이 ‘공영방송사업자’란 포괄적 개념만 사용하는 것과 대비된다고도 평가했다.

윤 교수는 “국내 논의는 통합미디어법을 ‘기존 법 체계의 통합’ 혹은 ‘규제 형평성의 회복’이라는 기술적, 행정적 과제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통합 그 자체가 정책 목표로 오인되었고, 그 결과 미디어 공공성, 플랫폼 권력, 자본 축적 구조라는 핵심 쟁점은 반복적으로 주변화되었다”고 발제문에 적었다. 이에 따라 △방송, 시청각미디어, 플랫폼 서비스를 포괄하는 법적 개념 정의 △공영방송, 민영방송, 디지털미디어서비스란 제도적 구분 위 차등적 권리와 의무 설계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란 형식적 원칙을 넘어 구조적 권력 비대칭성을 규제 핵심 기준으로 설정하는 접근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윤 교수는 “통합미디어법 논의의 핵심 질문은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통합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통합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있다. 미디어를 단순히 산업 부문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한다면, 통합미디어법은 ‘규제의 형평성’이나 ‘시장의 효율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제도적 재구성’이라는 과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통합미디어법 논의는 여전히 추가로 논의될 사안들이 산재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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