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사회부 사건팀 시절이었다.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원래 아침에는 여자 손님 안 태워요. 오늘은 특별히 태워준 거예요.” 고마워하라고 말한 걸까. 요즘 ‘노키즈존’ 논란을 볼 때마다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아침 첫 손님으로는 여자를 받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원칙’은 그 택시 기사의 자유일까 아니면 차별일까. 아이를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자영업자의 자유일까. 더 나아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이곳은 사유지니 에티켓을 지켜달라’며 노동조합 조끼를 벗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은? (해당 백화점은 결국 대표가 나서서 사과했다) 중국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카페는? 사업주가 자기 영업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가려 받는 것이 자유라면, 그렇다면 “나는 내 사업장에 여자를 고용하지 않겠다”, “내가 설립한 학교에 동성애자를 선발하지 않겠다”는 말은 차별일까 아닐까.
개인적 편견으로 특정 국가 출신을 싫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 조끼가 백화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생각을 모두 법으로 규율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일은 법이 규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은 언제나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더욱 확산된다. 만약 어떤 가게가 ‘동성애자 출입금지’ 팻말을 붙였을 때 제재하지 않는다면 옆 가게 주인이 같은 팻말을 붙이는 일을 막을 방법이 없고, 결국 동성애자가 허용되지 않는 장소가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가 퍼져 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차별’의 경계를 나누는 일을 계속 나중으로 미뤄온 결과일 수 있다. 생각과 표현을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이런 일이 공적 영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국가에는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11차례 발의됐으나 제대로 된 심의 없이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일부 극우 개신교계 단체들의 악성 민원이 원인이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때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여자 탈의실에 여장남자가 들어오게 된다” 같은 가짜뉴스가 돌고 조직적 반대 청원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민의 실제 인식은 이보다 앞서 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 여론조사에서는 67.2%가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근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여론조사기관 티브릿지에 의뢰해 18~39세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55.1%가 ‘알고 있다’고 답했고, 84.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유엔 산하 기구들은 지금까지 14차례나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특정 종교 집단이 실력 행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가 차별을 정의하고 규율하는 일을 미루는 건 국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새해 들어 차별금지법이 다시 발의됐다.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세상 모든 불합리한 차별이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유로 혐오하거나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국가가 분명히 하는 계기로서의 의미는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이 법이 제대로 논의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중에’ 말고 이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