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에 관하여

[이슈 인사이드 | 환경]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기후외교의 균열이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COP30)에서 다시 선명해졌다. 미국은 사실상 불참했고, 중국이 그 공백을 빠르게 채우며 개도국 진영을 넓게 규합했다. 기후문제는 더 이상 모든 국가가 함께 움직인다는 전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으로 세계 공급망이 갈라지고, 국제질서는 다극화되는 추세다. 이런 흐름에서 기후 대응의 연대는 뒤로 밀리고, 외교적 선택과 산업 전략이 앞에 놓이는 상황이 됐다.


COP30의 협상 장면은 ‘포스트 파리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미국이 주도권을 잃은 사이 중국은 기후금융·기술협력·남남협력 프로그램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웠다. 중재 역할을 자임한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은 양 진영의 균열을 좁히지 못했다. 각국은 더 많은 감축을 요구하면서도, 자국 산업의 부담을 줄이는 합리적 핸들을 찾는 데 분주했다. 기후정책의 균열은 이제 구조적이다. 대의가 아닌, 각국 정치의 구실이 되는 양태다.


한국도 같은 국면 위에 있다. 탈석탄동맹(PPCA) 가입은 분명한 방향 전환이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과제는 더 많아졌다. 전력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증가 속도를 어떻게 맞출지, 원전·가스·재생에너지가 혼존하는 전원 구조를 어떤 로드맵으로 조정할지, 지역 수용성을 확보할 실질적 도구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모두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는 다른 실용주의 노선이라지만, 정책을 받칠 기반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국내 이해관계 충돌도 더 복잡해졌다. 전력시장 규칙과 송전선로 증설, 산업계의 공급안정 우려, 환경단체의 속도 요구, 지자체의 개발 민원 등이 얽혀 정책은 여전히 갈림길 앞에 있다. 이른바 에너지 이해관계가 만들어온 힘의 균형을 조정하지 못하면, 이재명 정부 역시 전환의 속도와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기후기술은 정책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산업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전력망 관리, 고효율 설비, 배터리와 탄소저감 기술은 전환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이 가발로 상징되던 경공업에서 철강 중심의 중공업을 거쳐 반도체로 산업의 무게중심을 옮겨왔듯, 기후기술 역시 다음 산업전환의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 전환을 떠받칠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COP30은 국제 연대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던 시기가 저물고, 각국이 외교와 산업, 정치적 이해를 함께 계산하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줬다. 한국 역시 기후정책을 환경 의제에만 묶어둘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감축과 적응, 산업전환과 지역전환을 동시에 요구받는 복합의 국면이다.


이 흐름 속, 기후 주제는 시대적 과제를 넘어 불멸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앞으로 어떤 세대, 정부 나아가 어떤 종(種)이 득세하더라도 바꾸지 못할 의사결정 최일선이 됐으니 말이다. 다가오는 병오년, 한국의 기후정책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을 설계하는 문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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