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자의 재능 인정하는 게 '좋은 언론' 출발점"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기자다움' 대신 개별역량 극대화하는 수습 교육 등 제언

25일 미디어오늘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한국언론학회와 공동 주최한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김한내 수습기자

“한 야구팀의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4번 타자’를 할 만한 선수로 채운다면, 그 팀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꼴찌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언론은 지금까지 이런 노력만 해온 건 아닌가.”

25일 미디어오늘과 한국언론학회 공동주최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박영흠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언론이 기자들의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기보다는 강인함과 근성 등 전통적인 ‘기자다움’의 가치만 강요해왔던 건 아니냐는 취지다.

박영흠 교수는 “이것이 어쩌면 좋은 언론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이 신뢰를 받지 못하게 만들었던 장애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며 “수습기자 교육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발상을 바꾸는 계기가 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리꼬미’ 퇴출 후 언론계는 변화했나

2016년 경향신문은 과거 언론계의 대표적인 수습기자 교육 방식인 ‘하리꼬미’(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경찰서에서 잠을 자며 취재하는 행위를 일컫는 언론계 은어)를 폐지했다. 이후 2018년 7월 주52시간 상한근로제가 도입되면서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 등에서도 하리꼬미 폐지 움직임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하리꼬미에 대해 “교육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고, 인격 모독에 가까운 도제식 교육”이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하리꼬미는 강인한 ‘독종’ 기자라는 규범적인 성향을 주입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경찰에게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벌이는 등의 행위를 통해 권력자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다부진 근성’을 만들어내는 게 취지였다는 것이다. 동시에 “선배의 지시라면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뉴스룸 조직 내부의 권위주의를 내면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강압적인 교육 방식이 힘을 잃기 시작한 건 ‘저널리즘의 위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하리꼬미 폐지를 주52시간제 도입의 결과로만 보는 건 사실과 다르다”면서 “기자 직군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신입 기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보상이 줄어들면서 선배들은 과거의 규범과 전통을 따르도록 요구할 자신감을 잃었고, 후배 역시 내부 논리를 억지로 받아들일 유인이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하리꼬미 폐지 이후 9년여가 지났음에도 언론사가 대안적인 수습기자 교육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언론사에는 체계적인 교육 방식이 존재하지 않아, 교육을 맡은 선배들의 개인적인 역량에 따라 수습기자가 받는 교육의 편차가 크다. 언론사 내부의 관습적인 인식 역시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먹구구식’ 교육 역시 여전한 상황이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심리적인 하리꼬미 역시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하리꼬미를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권위에 도전하는 근성은 중요하지만 그 방식이 ‘어디가서 꿀리지 말고 언론이 남들의 위에 있다는 걸 보여줘라’는 식이다. 물리적인 하리꼬미는 사라졌지만 심리적 하리꼬미는 여전해 보인다”며 “교육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교육의 본질은 분명 바뀐 부분도 많다. 하지만 본질 그 자체가 사라진 측면이 더 문제”라며 지금 언론의 상황을 “효과적이고 적절한 교육 방법이 없어지니 합의가 사라지고 본질이라고 할 만한 교육이 사라진 공백 상태”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결국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 대상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한내 수습기자

기자의 역량 다양성 인정하고 전문성 키워야

토론자들은 기자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유호선 성균관대학교 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 연구소 부소장은 “기자들에게도 빅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 활용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사용법을 익힐 필요는 없지만 기술을 사회문제 해결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새로운 형태의 뉴스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박 교수 역시 “기자를 만나다 보면 이른바 ‘독종’ 기자들이 여전히 있다”면서도 “단지 이것을 유일한 기자의 역량으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늘어나고 있다. 뉴스룸 역시 과거와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장려하고 칭찬하는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처럼 달라진 뉴스 전달 방식이 이용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성 있는 기자를 기르기 위해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혜원 시사IN 기자는 “2~3년에 한 번씩 출입처가 바뀌고 데스크가 되면 기사를 거의 쓰지 않는 환경에서 숙련된 기자가 나올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영감을 주는 분석을 해주는 기사를 쓰는 기자로 이상적인 기자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널리즘이 성장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취재 윤리와 함께 ‘팩트’ 엄밀성 키우는 교육도 필요

취재 윤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해외 퀄리티 저널리즘은 한 달간 기자가 들어오면 아무것도 안 시키고 윤리 교육만 시키기도 하는데, 한국은 언론계에서 수많은 가이드라인과 규범을 만들지만 이를 교육하는 기회는 사실상 없다”면서 “한국언론진흥재단 교육을 확대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부소장 역시 “취재 윤리에 대한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된다는 지적이 많다”며 “체계적 교육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취재 윤리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임명현 MBC 기자는 “하리꼬미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팩트의 엄밀성”이라며 “팩트의 엄밀성은 앞으로 변화하는 뉴스 수요의 측면에서도 중요한데, 이를 체감할 수 있는 기자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미디어오늘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희정 미디어오늘 대표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좋은 언론은 무엇인지를 묻고, 필요한 과제들을 도출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오늘 나온 많은 질문과 답들을 모두 받아서 앞으로도 언론과 미디어 생태계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애쓰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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