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취재가 시작되고 8년 가까이 7억 원 가까운 쓰레기 종량제 봉툿값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급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제주시장이 내놓은 답입니다. 무책임했습니다. 환경부는 2008년부터 내놓은 지침을 통해 쓰레기 종량제봉투는 그 자체로 돈의 가치를 가지는 유가증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인쇄하는 인쇄소는 빗대어 이야기하면 ‘조폐공사’인 셈입니다. 거기에서 찍어내는 화폐나 다름없는 종량제 봉투를 8년 동안 한 공무직이 빼돌렸고 그 뒤에는 ‘카카오톡’과 ‘엑셀’로 관리한 무능한 행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국가통계포털에 제주도가 보고한 생산량과 판매량 자체가 부실이었습니다. 이러한 무능 탓인지 제주도의 청소예산자립도는 20년 넘게 30% 초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소중한 세입을 쌈짓돈처럼 뺴돌린 탓에 쓰레기 소각장을 유치하며 종량제 봉툿값의 일부를 받기로 한 혐오시설 유치 주민들의 돈도 사라졌습니다. 수소 트램을 도입하겠다, 간선급행버스 시스템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심 항공교통을 도입하겠다며 찬란한 구호를 내세우는 지방정부지만 행정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음을 이번 보도가 폭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취재는 2년 4개월의 보도국장직을 마치고 현업으로 돌아와 첫 결과물입니다. 이 취재가 보도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하고 튼튼한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영상황이 열악한 지역방송에게 최대 광고주인 지방자치단체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지만 보도국장 임명동의제와 중간평가제를 단체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보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보도국장 재직 시설, 지방정부를 비판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사장은 밤 10시가 넘어 집 앞으로 찾아와 책임을 추궁하고, 보도기사작성 프로그램에 몰래 침투해 기사와 큐시트를 엿봤습니다. 심지어 비판보도를 할 경우 사장과 국장단에 사전 보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보도기사작성 프로그램에서 권한 없는 사람을 추방할 수 있었던 것도 또, 그 뒤 몇 달 더 보도국장직을 수행하며 기자들의 존재 이유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제도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단체협약이라는 것은 어느 일방이 해지를 통보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지역 MBC와 민영 방송에도 보도국장 임명동의제가 법으로 보장되어야합니다. 하지만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지역은 또다시 소외되고 들러리로 전락했습니다. 성찰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지역에도 언론노동자가 존재하며 그 노동자들은 파업 때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숫자에 불과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업 복귀 후 연착륙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부터 배움을 청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제정임, 정은령, 이규연 교수님외 많은 교수님들의 풍성한 가르침 덕분입니다. 배움이 없었다면 이 취재는 단순 사건보도에 그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보도국 식구들의 믿음과 배려에도 감사합니다. 특히 김찬년 부장의 도움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모든 근원이 되어준 아내 장지영의 사랑과 신뢰 덕분에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들 연우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었다는 것도 수상의 기쁨입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