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남긴 흔적은 없었을까’란 궁금증이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하루 뒤 브리핑을 엽니다. 수사를 종합하는 자리가 아닌 것도 이례적이었는데, 브리핑 내용이 가해 남성의 잔인한 범행 묘사에 집중된 것이 의아했습니다.
여러 경로 취재로 확인한 피해자의 흔적은 더 짙고 깊었습니다. 이미 숱한 폭행 피해로 심신이 무너져 내렸을 상황에서도 피해자는 녹음·녹취록 등 피해 증거자료 600여 장을 엮어 가해자를 구속해달라고 경찰에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의 구명 요청을 외면했고, 사건을 막지 못했습니다.
첫 보도 후 유족과 닿으면서 사안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옥스런 고통에서도 피해가 가족으로 이어지지 않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용기를 냈다고 피해자는 고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숨진 뒤에야 가해자의 갖가지 악행을 알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내려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건 제대로 알아야 수사기관에 따져묻고 사회에 알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취재를 이어간 것도 그 용기 덕이었습니다.
죽음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건 여전히 망설여지고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써야 하는 이유를 구태여 댄다면, 같은 비극을 막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관계성 범죄 피해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게 수사 공백이 메워지고, 취약한 법 보호망이 두터워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