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말 나오는 KBS 수신료 인상 추진 계획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가 수신료 인상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6월 말 열린 경영수지점검회의에서 박장범 사장이 1981년부터 2500원으로 동결된 수신료를 44년만에 500원 인상하겠다는, 이른바 3·4·5 슬로건을 공개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의 독단적인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으로 맞은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적지 않은 규모의 희망퇴직을 시행했던 KBS가 재정 안정에 가장 효과적 수단인 수신료 인상을 검토하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기타 선진국들에 비해 수신료가 낮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당위성도 있다.


그러나 KBS 경영진이 명심해야 할 점은 수신료 인상은 재정 안정을 위한 최후의 카드가 돼야 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수용성을 담보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수신료는 전기요금과의 통합징수로 사실상 반(半)강제성을 갖고 있어, 국민들에게는 일종의 준조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KBS 스스로 공영방송의 효용성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면, 수신료 인상이 현실화되기 어렵다. 앞서 4차례(2007, 2011, 2013, 2021년)의 KBS 수신료 인상 시도가 무산된 것도 KBS가 공영방송에 기대되는 공정성을 지녔는지, 공영방송 본연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문과 무관하지 않다.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고, 2023년 윤석열 정권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할 당시 대통령실 제안에 96% 이상이 찬성했다는 결과는 KBS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방증한다. 수신료 인상 추진에 앞서 KBS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은 이번 박장범 사장의 수신료 인상 계획이 KBS 안팎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발표됐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신료 통합징수안이 4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KBS는 겨우 벼랑 끝에서 벗어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여전한 반감과 탄핵에 따른 정권 교체가 이뤄진 어수선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조직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게 KBS 내부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박장범 사장이 갑작스럽게 수신료 인상안을 들고나오면서 이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의 악성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조직 내부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인상될 수신료를 낼 국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의아하다는 내부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수신료 인상은 KBS 이사회의 심의·의결과 방송통신위원회 제출, 국회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KBS 이사진은 이번 사안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다. 수신료 인상 추진 계획 등에 대한 사전 고지도 없이 불쑥 외부에 알렸다는 점에서 이사들이 황당해했다는 후문이다. 정작 박 사장은 수신료 인상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 열린 이사회에도 광고주와의 미팅을 이유로 불참했다고 한다. 중차대한 경영사항 결정에 ‘이사회 패싱’이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KBS 안팎에서는 이번 발표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박 사장이 2027년 말까지 임기를 보장받기 위한 내부 여론 단속용이라는 뒷말까지 나온다.


아무리 목표가 합리적이라고 해도 사회적 논의가 무르익지 않으면 수신료 인상은 가능하지 않다. KBS 경영진은 내부 구성원들부터 이해시킬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을 밟은 뒤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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