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맞고 있다. 온라인 괴롭힘은 일상이고, 광장에서, 심지어 국회에서도 기자들은 폭력을 경험한다. 위협이 반복되면 취재는 위축되고, 언론의 견제·감시 기능은 쪼그라든다. 이런 현실을 진단하고 개선할 방안을 살펴보는 기획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기자들에 대한 폭력은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규모나 성향과 상관없이 언론집단 전체가 혐오의 위협에 놓인 지금 언론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기자협회보는 3년에서 10년차 사이 현장 기자들과 23일 만나 취재 일선의 고충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좌담에는 정치, 사회, 법조 분야 취재기자와 영상기자 등 네 명이 참여했다. 이들 모두 12·3 비상계엄 이후 한남동 대통령 관저와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 취재를 이어왔다. 일선 기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언론계의 현실을 비판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기자들은 정치와 사회 전반의 양극화와 그 사이에서 빠르게 떠오른 유튜브가 언론혐오를 부추겼다는 데 공감했다. 이런 현상에는 좌우 진영의 구분이 없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기자들은 언론사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한국기자협회가 정치권을 상대로 직접 대화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에서 비롯된 광장의 폭력은 언론계와 정치권이 함께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어느 쪽이냐”… 일상 된 혐오·양극화
김고은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지난 반년만큼 기자로 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듯하다. ‘기레기’라는 비난이나 공격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12·3 비상계엄 이후 이어진 폭력 사태는 이례적이다.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뉴스타파 기자 폭행을 보면서 ‘어쩔 수 없다’며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편 기획은 기자들에 대한 폭력의 원인을 포퓰리즘으로 보고 언론을 건너뛴 정치는 파렴치해진다고 짚었다. 문제 진단에 공감했나.
강지수 한국일보 기자(사회부, 4년차): 정치가 타락한다는 표현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집회에서 지지자들은 대놓고 얘기한다. 경찰관들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면 “우리 의원님들이 와서 막아줄 거야”라고 한다.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협위원장들과 온다. 관저 정문 앞에서 드러눕는데도 의원들은 경찰관들에게 ‘우리가 책임질 테니 그만 제지하라’고 말한다. 지지자들과 결합한 정치가 공권력까지 이렇게 왜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대권 JTBC 기자(영상취재, 8년차): 원인은 포퓰리즘도 있겠는데 저는 좀 달리 본다. 요즘은 일상 자체에 혐오가 기본값이 됐다. 정치를 잘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상대 정파를 깔아뭉개려는 풍토가 심해지고 있다. 사회 전반이 그렇게 되고 있다. 기자뿐만 아니라 검사도, 판사도 자기 편이 아니라고 느끼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조국 사태’ 때는 JTBC가 양쪽 진영에서 공격받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편 먹고 두둔해야만 하는 사회는 아니라 생각한다. 상대를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진 사태의 전초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강원 일요신문 기자(정치부, 3년차): 동감한다. 취재 현장에서도 양극화를 많이 느낀다. 윤석열 전 대통령 가족의 고향인 충청남도의 한 마을을 취재했는데 처음 만난 어르신이 대뜸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뭐라 대답할지 몰랐다. 심지어 카페에 갔더니 거기서도 사장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자기는 어떤 성향인데, 이 동네에서 진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조언해 줬다. 나와 반대면 그냥 공격해도 되는 적이 된 것 같다. 서부지법 폭동 때도 ‘생각이 달라도 동료 시민’이라고 여겼다면 기자들을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의 범람, 저널리즘의 후퇴
권규홍 아주경제 기자(법조팀, 10년차): 대통령 관저 앞에서 취재했는데 방송사보다 유튜버가 더 많아 놀랐다. 이 사람들이 취재 현장을 과열시키고 폭력 상황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인기 유튜버가 ‘네가 뭐라도 되냐’면서 자리를 뺏은 일도 있었다. 제가 안 비키니까 자기를 폭행한다면서 경찰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일이 커질 거 같아서 물러났는데 ‘내가 기자가 맞나’ 자괴감이 들었다. 유튜버들이 스스로 권력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강지수: 신문사 기자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이 이제는 ‘그럼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회 현장에서 인기 유튜버가 저기 있다고 저를 끌고 가면서 함께 구경 가자고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집회 취재 때마다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느끼지만 무기력함도 많이 느꼈다.
이강원: 온라인 커뮤니티를 크롤링 방법으로 취재해 봤다. 이야깃거리를 극우 유튜버가 만들어주면 각 커뮤니티에서 이 주제를 가져와 자기들만의 논리를 만들고 자생하고 생태계를 구축한다. 어쩌면 이들은 꼬리일 뿐인데 몸통인 정치를 흔드는 것 같다. 사석에서 정치인과 얘기해 보면 극우 지지자들을 많이 신경 쓴다.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자기 표를 지키려고 현장에 나가서 극우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는 거다.
김고은: 2022년 대선 때만 해도 대선 후보들이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고 ‘삼프로TV’에 출연한 게 화제가 됐다. 몇 년 사이 이게 너무 당연한 문화가 됐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유튜브에는 출연해도 신문과는 거의 인터뷰하지 않았다. 이젠 언론은 ‘패싱’해도 아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 같다.
강지수: 그래도 계엄 이후 독자 유입이 많이 늘었다. 유튜브의 덩치가 많이 커졌어도 위기 상황에서 큰일이 있을 때는 시민이 언론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가 100년, 200년 남을 거니까 최대한 정확히 기록하려 했다. 이건 유튜버들이 못했을 거다. 전통 언론이 이런 부분에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언론혐오, 나아지라는 비판 아니다
박대권: 제 경우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지지자들이 시비 걸려고 많이 몰려왔다. 꼭 누군지 알아야겠다고 한다. 명함을 받으면 어느 기자가 현장에 왔다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린다. 저는 그래서 더 일부러 지갑에 명함을 안 넣고 다닌다. 그런 때는 사원증만 보여주고 일하러 왔다는 목적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사람들도 알겠다고 수긍하면서 가는 경우가 많다.
강지수: 맞다. 명함을 주면 단체 대화방에 올려 버린다. 지금 어느 매체 어느 기자가 집회 현장에 ‘침투’했으니 문자 메시지 보내고 전화하라고 부추긴다. 인터뷰하려고 지지자들에게 명함을 주고 나면 들고 다니면서 기자라고 사칭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 기자가 그런 피해를 봤다. 취재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명함도 주면 안 되나 싶을 정도가 됐다.
권규홍: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측의 기자회견 때 불편한 질문을 던졌더니 유튜브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이 ‘아주경제 누구냐, 신상 털어라’ 하면서 내가 노출됐다. 저도 모르게 얼굴 사진, 출신 학교, 사는 지역 등 모든 게 다 나왔다. 학생일 때 강연장에서 유시민 전 장관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SNS에 있는 그 사진을 보고 이른바 ‘좌빨’로 단정짓기도 했다.
김고은: 정치인들도 지지자들만 신경 쓰면 되는 환경이 되면서 스스럼없이 혐오 발언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020년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막말했는데 지지자들이 틀린 말이 아니라며 이 전 대표를 지지했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태도가 다 유튜브에 올라가고 낱낱이 평가받는다.
권규홍: 그런 비판은 언론이 자정하거나 반성할 수 있게 하는 비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 때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조국 전 장관 자택 앞에서 중국집 배달원에게 질문했던 기자들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회사에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대중은 그 단면만 보고 비난했다. 그것 하나만으로 기자들을 낙인찍고 지금까지 언론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거다.
지침 없는 뉴스룸… 안에서도 ‘온도 차’
김고은: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얘기했는데 데스크는 현장을 잘 모르지 않나. 현장의 이야기가 언론사 상층부까지 전달되고 있다고 보나. 젊은 기자들이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등 느끼는 온도 차도 다른 것 같은데. 뉴스룸 내부 갈등은 없었나.
강지수: 수습기자가 들어오면 재난보도준칙, 자살예방보도준칙은 반복해서 알려준다. 그런데 위험취재 현장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다. 후배 기자들이 휴대전화를 뺏겼다, 가방을 잡아채서 끌려다녔다, 밀쳐서 바닥에 쓰러졌다고 보고를 올리지만 어느 선까지 보고가 접수됐는지도 모르겠다. 정찬승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개인적으로 만든 위험취재 지침만 기자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언론사에는 명함을 줘야 하는 건지 이런 지침도 없다. 기자협회 차원에서 지침이 있어야 한다.
권규홍: 일반 기업은 직원이 다치면 산업재해 인정이 가능한데 왜 우리는 현장에서 맞고 욕을 먹어도 안 되는 건지 의문이다. 언론사에서는 휴가 며칠 내라면서 그러면 다 되는 것처럼 말한다. 위험 상황에 대해 논의하려고 해도 다치면 치료비 주겠다는 식이다. 정신적 고통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는 기자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산재가 되면 회사도 책임을 지니까 달라질 것 같다. ‘맞아도 싼 기자는 없다’처럼 ‘엄살 피우는 기자는 없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강지수: 기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는 지난해 말 제주항공 참사 때처럼 대형 재난이 있을 때만 인정되는 분위기가 있다. 회사에서도 전남 무안공항에 장기 투입됐던 기자들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해 주긴 했다. 그런데 집회는 당연히 취재해야 하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집회는 집회, 재난은 재난,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보면 안 된다. 집회는 갈 때마다 전쟁터인데 그걸 잘 모른다. 지면을 비워둔 채 매일 다른 주제로 집회 기사를 써넣으라는 반복된 지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대권: MBC와 달리 우린 다행히 장비 파손은 겪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뒤에서 발로 차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곤 했다. 촬영 보조를 하는 오디오맨은 카메라 뒤에 서 있다가 봉변을 자주 당했다. 멱살도 잡혔고 겨울이어서 패딩을 입고 있는데 집회 인원들이 옷을 잡아당겨 외투가 찢어지기도 했다. 치료비는 지원해 주더라도 옷이 망가지거나 소지품 손망실 등 피해에 대한 세심한 지원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수수방관 공권력, 언론 보호해야
박대권: 폭력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가 기자고 언론사인데 개인과 시비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인식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공권력에도 적극적으로 언론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 사후에라도 고소하는 등 조치를 다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맞는 게 당연한 선례가 되면 나중에 언론계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다.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에서도 경찰 기동대가 배치돼 있었고 서초경찰서 정보과 경찰관도 있었는데도 과열, 충돌 상황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기자협회 차원에서 경찰에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
이강원: 실제로 사법처리도 좋은 방법이다. 서부지법 폭동이 오히려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폭도들이 경찰에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지고 실형을 받고 있다. 폭도들도 ‘정치가 우릴 지켜주지 않네’라고 알게 된 것 같다. 서부지법 폭동 다음부터 현장에 가면 누가 흥분하더라도 주변에서 ‘진정하라’고 말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우리 폭력은 쓰면 안 된다’는 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부지법 폭동이 기자들에게 안 좋은 사건이면서 동시에 좋은 선례가 된 셈이다.
정치권과 언론계, 직접 대화해야
김고은: 과거에는 경찰이 때리면 시민이 지켜주곤 했다. 지금은 시민이 때리고 경찰은 수수방관하는 것 같다. 시민을 취재하면서도 이렇게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언론계 밖에서도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정치와 광장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함께 안전해져야 한다.
이강원: 피해사례 수집도 중요할 것 같다. 기자협회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 회원사를 통해서 피해사례를 수시로 종합하고 다른 채널도 열어서 기자 개인이 직접 신고할 수도 있게 해야 한다. 데이터가 모이면 나중에 위험취재를 위한 준칙을 만들 때도 쓸 수 있다.
권규홍: 국회에서 의원들과 기자들이 함께 세미나를 해보면 좋겠다. 기자협회가 국회에 제안해 추진해야 한다. 정치와 언론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취재 관행에 대해서도 자주, 공개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이 서로 오해가 있는 것도 있고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부분도 있으니까 알게 되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은 서로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만드는 것이니 그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면 지지자들도 멈출 거다.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데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어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