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 ‘사랑해.’ ‘잊지 않을게.’
어느덧 유족들만 남은 전남 무안국제공항 여객터미널. 그곳 계단엔 슬픔과 간절함, 그리움이 가득 담긴 2636개의 편지가 빼곡히 붙어있다. 유족은 물론 친구, 직장동료, 지인, 또 참사 소식에 공항을 찾은 자원봉사자, 시민들이 직접 쓴 편지들이다. 2월 이곳을 찾은 유지영·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는 이 편지들을 한 장 한 장 카메라에 담았다. 국가적 재난임에도 제대로 추모 받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고통 속에 있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이 노력은 최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민주언론실천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100일째 수취인불명 [참사 아카이브: 공항 계단의 편지]>로 결실을 맺었다.
“이전 참사들과 달리 제주항공 참사에선 유족 목소리가 직접 인용된 기사들이 유독 없었어요.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분들의 목소리를 편집 없이, 되도록 온전하게 싣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러다 공항 계단에 포스트잇 같은 게 붙어 있는 걸 사진으로 본 거죠.(유지영)” 사회적 참사는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한 국가의 슬픔으로 남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유 기자는 그 마음을 담아 계단에 붙은 편지를 아카이빙하는 기획을 떠올렸다. 유족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방법, 그와 동시에 희생자를 추모했던 이들의 마음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건팀장이었던 소중한 기자는 유 기자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제주항공 참사 초기, 현장을 취재했던 그는 당시 일종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참사 현장을 성실히 취재했지만 사실 그 이후엔 비상계엄 때문에 잘 챙기지 못했거든요. 조금 긴 호흡으로 이 참사를 바라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찰나에 발제가 들어온 거죠. 사람 한 명 한 명이 우주라고 하잖아요. 통상적으로 참사가 벌어졌을 때 우린 희생자들을 숫자로 기록하지만, 그것만 남겨선 안 된다는 게 세월호 때도 그랬고 제가 재난보도를 해오며 느꼈던 점이에요. 그래서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며 또 연대하는 있다는 걸 편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소중한)”
그 마음을 담아 그들은 2월,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계단엔 기자들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정말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붙어 있더라고요. 일단 저는 오른쪽 계단을, 선배는 왼쪽 계단을 맡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너무 막막했어요.(유지영)”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두 기자가 사진을 찍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하지만 1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는 것이 마냥 힘들진 않았다. 많은 내용이 함축된 편지를 읽으며 그 마음을 생각하고, 어느새 기도하는 마음으로 촬영을 이어갔다고 했다.
촬영 이후엔 편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유족, 시민, 다른 참사 유족들이 쓴 편지로 분류했는데, 희생자 한 명의 이름이 수십 장의 편지에서 나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이 인터뷰의 시작점이 돼 3월 고 박예원씨의 어머니 이효은씨, 고 이민주씨의 어머니 정현경씨를 인터뷰했다. 기자들은 인터뷰 자리에서 고인의 이름이 담긴 편지를 모아 유족들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방대한 양의 편지를 인터랙티브 기사로 재구성하는 것도 과제였다. 이 작업은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전문기자가 맡았다. “처음에는 수백 장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장수가 굉장히 많았고 종류도 다양했어요. A4 용지부터 엽서, 작은 포스트잇까지, 게다가 코팅된 것도 있었고요. 이걸 포토샵으로 손질하는 데만 사흘이 걸렸습니다.(이종호)”
수천 장의 편지를 오류 없이 웹페이지에 올리는 것도 숙제 중 하나였다. 이 기자는 ‘무한 스크롤’ 방식을 활용해 PC든 모바일이든 가볍게 편지를 불러올 수 있도록 해결책을 마련했다. “참사 현장에 메시지를 붙이는 문화는 강남역 사건 때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보존을 한다고 해도 그 장소에 가야 볼 수 있잖아요. 유족 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미처 편지를 못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디지털로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라도 위안과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이종호)”
기자들의 노력은 최근 민주언론실천상 수상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지영 기자는 “이번 취재를 하면서 기사 한 번 내보내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며 “무안공항에 붙은 편지에도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안전한 사회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열망과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내용을 되새기려 한다”고 말했다. 소중한 기자도 “기사는 수단일 뿐인데 종종 사람이 수단이 되고 기사가 목적이 되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다”며 “이번 취재를 통해 특히 재난보도에선 사람이 목적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