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의 비상계엄 후 첫 대선이다.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건을 지나 맞이하는 대선 또한 초유의 풍경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이번 선거는 전망적 투표보다는 회고적 투표 성향이 강하다.
헌법재판소에서 ‘8대0’으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아직도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미래로 나아가자는 이야기가 좀처럼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윤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 미래 비전이 주목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수위원회 없이 시작하는 새 정부의 공약은 너무나 중요하다. 선거 다음 날부터 국정을 맡을 차기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나라를 운영할지 유권자는 알 권리가 있다. 미래 비전을 내놓고 검증받는 것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정당의 의무이자 책무다.
하지만 주요 정당은 ‘지각 공약 발표’ 중이다. 그 안에서도 언론·미디어 정책은 더욱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대선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지금이라도 후보들은 언론·미디어 분야를 비롯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망친 언론의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60위권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 시절 40위권에서 급락한 순위다.
윤석열 정부는 비판 언론을 향한 형사 대응 등으로 언론 자유를 위축시켰다. 권력자의 자제와 의지가 아닌, 법과 제도로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관련한 다양한 방안은 이미 제안돼 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송3법’ 개정도 중요하다. 공영방송이 더 이상 정권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거버넌스 마련이 핵심이다. 이사회 구성과 사장 추천·임명 방식 등이 정치권 유불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사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지키기 위한 내용을 담은 신문법 개정안도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의 공론장 역할을 위해서는 지역 언론 지원과 비정규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한 조직에서 건강한 언론이 자란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지역 언론에 대한 재정 지원이 긴요하다. 이를 위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개정과 미디어 바우처 대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역방송발전기금 신설도 고민해야 한다.
2017년 방통위 등 5개 정부 부처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EBS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찾았다 교통사고로 숨진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 PD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20년 방통위는 KBS 등 21개 지상파 사업자 162개 방송국 재허가를 의결하며 ‘지상파 비정규직 실태조사 및 처우 개선’을 공통 조건으로 내걸었다.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에 대한 괴롭힘은 있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온 바로 지금, 미디어 비정규직에 대한 촘촘한 정책 마련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각 언론 주체의 정책 제안도 이미 나와 있다. 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지방신문협회·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 등 7개 단체가 제시한 언론 과제가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그냥 넘어가게 두지 말자.
언론의 회복은 민주주의 회복의 다른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란 이후 다시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주권자의 시간’에 언론·미디어 정책도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