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직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더 큰 책임을 지는 길”을 가겠다며 사퇴했다. 그리고 유튜브에 ‘한덕수TV’ 채널을 개설했다. 약 6시간 뒤 더불어민주당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상정했다. 최 부총리는 즉각 사표를 냈고, 이미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의 실시간으로 사표를 수리했다. 이에 밤 10시53분, 우원식 국회의장은 최 부총리 면직이 통지됐다며 투표 중지를 선언했고, 투표는 불성립됐다.
바로 어제, 약 8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현시점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가 대선을 33일 앞두고 유죄 취지의 선고를 받았고, 윤석열 정부의 2인자였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국무총리와 ‘대행의 대행’이었던 경제부총리가 줄사퇴했다.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서울신문)로 국정공백은 그야말로 현실이 됐고,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직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로 선거를 치르게 됐다.
2일 주요 아침 신문들에선 이런 사태에 대한 혼란과 혼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중앙일보가 1면 기사 제목에 쓴 그대로 ‘초유의 국정 혼돈 사태’다. 대다수 신문은 2심에서 무죄가 나온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반전’을 머리기사로 전한 것을 포함, 한덕수 대행과 최상목 부총리 줄사퇴를 1면에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신문들은 대부분 이 후보 파기환송심 선고가 대선 전에 나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대선 완주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고 전망하면서도,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명시한 헌법 제84조에 대해 대법원이 정리를 하지 않아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현재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이 계속 진행될지, 당선 무효형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등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조선 “나라 5년이 걸린 문제… 고법, 최대한 빨리 결론내야”
무엇보다 앞으로 한 달 남은 대선 정국이 요동칠 것이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대선 난기류’란 표현을 쓰며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조기 대선이 대형 난기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유죄 취지 파기환송... 사법리스크에 격랑 빠진 대선>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지만 형량이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당장 이 후보의 대선 출마가 제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격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게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기환송심 선고 시기도 안갯속”이라며 “물리적으로 쉽지 않지만 만에 하나 대선 후보자 등록일(11일) 이후 벌금 100만 원 이상 형이 나오면 민주당은 후보조차 낼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 판결 관련해 두 건의 사설을 썼다. <법적 출마 자격 없는 후보가 대통령 되면 어찌 할 건가>란 제하의 사설에선 “이 후보에 대한 구체적 형량은 선고하지 않았지만 선고 내용은 이 후보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과 다를 게 없다. 이 형량대로라면 이 후보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면서 “만약 그가 명백한 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강행해 실제 당선되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략) 나라 5년이 걸린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李 파기환송심 대법처럼 신속 선고해 법적 정의 세워야> 사설에선 “일단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한 지 9일 만에 판결을 내렸다. 파기환송심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재판 진행 절차에 이 후보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서울고법은 최대한 절차 진행을 당겨야 하고, 이 후보도 당당하게 소송 절차에 응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의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밝혔다.
경향·한겨레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 권력에 선거 좌우되다니”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 같은 혼란을 초래한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은 <대법 ‘이재명 유죄’ 파기환송,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사설에서 “대법 판결이 선거 기간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권력자의 정적 제거에 동원된 정치검찰에 철퇴를 가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에도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고법 판사 3인에 의해 대선 지지율 1위인 이 후보의 정치적 생명과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이 결정될 판”이라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의 피선거권과 5000만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제한하는 게 민주국가에서 온당한 일인가”라고 거듭 일갈했다.
경향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법률심인 대법원의 이날 선고는 졸속 그 자체였다. 하급심 판결이 서로 완전히 엇갈렸음에도 새로운 판례를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고,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문 같은 감동도 없었다. 조 대법원장이 읽은 판결문은 그저 1심 판결문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한 사실심 느낌이었다”며 “이런 판결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지금은 주권자의 시간, 사법부의 국민 선택 제한 안 된다> 사설에서 “민주적 권력 창출 과정에 사법부가 무리하게 개입한 결과”라고 비판하며 “내란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속에 주권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좌우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가뜩이나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기묘한 논리로 풀어주는가 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란 사태에 침묵을 지키면서 사법부의 헌정·민주주의 수호 의지도 불신받고 있다”면서 “대법원의 무리수로 이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신뢰가 없다면 사법부는 존재 근거를 잃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