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지 약 넉 달 만에 파면되고 조기 대선 국면이 본격화됐다. 이제 관심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쏠린다. 차기 대통령, 새 정부에 대한 전망과 함께 유력 정치인의 출마 혹은 불출마 선언들로 정치 뉴스가 채워지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 모두 ‘장미 대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향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을 꿈꾸기 마련, 언론 역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대선 보도는 놓칠 수 없다. 비상계엄 무리수를 둔 정권을 이어받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니 보도의 중요성 또한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러한 빠른 모드 전환은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 중 하나인데, 최근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중요한 것을 너무 빨리 잊거나 덮고 가는 것 같아서다. 대통령이 내란수괴 혐의를 받고 탄핵당한 일을 겪은 것, 노골적인 안티 페미니즘 정치를 앞세운 이를 대통령에 당선되게 한 현실, 그런 대통령이기에 여성 유권자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탄핵 광장의 절박함 등은 탄핵 국면에서도 그랬지만 대선 국면이 되자 더 쉽게 의제에서 밀려나는 모습이다.
응원봉 광장, 탄핵 광장의 주역 등으로 찬사를 받은 청년 여성의 존재감은 지금 어떤가. 냉정히 말해 계엄·탄핵 정국에서 집회 화력 동원이 절실할 때나 적극적으로 호명된 것에 그쳤다. ‘응원봉을 쥔 손이 의사봉을 쥐는 성평등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여성들의 외침에 대한 사회 전반의 호응은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이들이 보여준 정치적 결집력과 민주주의를 지켜낸 주권 의식 등 활약상에 비해 유권자로도 정치적 주체로도 가치를 평가절하당하는 인상을 준다.
정치권에선 여성 정책 공략 경쟁이 벌어지지도 않고, 여성 정치인을 후보로 밀어보자는 움직임도 미미하다. 체계적으로 여성 정치인을 키워보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모두 여성 유권자들이 강하게 요구하는 것들임에도 지금까지 그랬듯 애써 외면되고 있다. 오히려 지난 대선 때 톡톡히 써먹은 성별 갈라치기 및 페미니즘 악마화 전략을 다시 꺼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분위기다.
낯설지만은 않은 이런 전개에 한숨짓는 이들은 그동안 모욕의 역사가 반복돼 온 것을 상기한다. 여성은 어차피 더불어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집토끼론’, 성 비위나 여성혐오 정치로 몰락한 남성 정치인 다음 타자를 뽑는 선거에서도 여성을 지워 온 안면몰수 등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광장에서 일상으로 확산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성평등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사회는 더 이상 괜찮지 않다. 그 결함을 방치한 채 새 판을 짠다고 믿은 것은 전혀 새로울 수가 없으며, 그래서 비슷한 비극이 반복돼 온 것이다. 광장을 나가는 수고만 더할 뿐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회복적 민주주의는 위대하지만, 이는 매번 회복해야 할 일이 터지는 사회를 두고만 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사회이기에 아직도 20% 수준인 국회 내 여성 정치인 비율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에 해당하는 최하위권, OECD 평균인 34.1%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여성 대표성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나라가 민주주의력을 뽐내는 것도 민망하니 그만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