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가치 의문 스포츠 행사... SBS, 류희림 청탁으로 보도?

SBS 노조 "뉴스청탁·독립성 훼손" 내부 비판
보도본부장 "말한사람 누군지보다 내용 중요"
류 위원장, 사적 이해관계 질문에 답변 거부

SBS가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청탁으로 보도 가치가 낮은 스포츠 행사를 수차례 기사화했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됐다. 류 위원장은 방송 재허가를 받아야 하는 피심의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은지, 행사 주최 측과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지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18일 사측과 보도편성위원회를 열고 ‘보도본부장 뉴스 청탁 및 독립성 훼손’을 안건으로 제기했다. 양윤석 보도본부장이 지난달 중순 류 위원장과 만나 특정 행사 보도를 요청받았다는 것이다. 양 본부장은 류 위원장과 동계스포츠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해당 행사가 언급돼 스스로 알아봤고, 류 위원장과 주최 측의 사적 이해관계는 의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노조에 설명했다.

3일 아침 방송된 SBS 모닝와이드. 이날 대회가 종료됐지만 SBS는 다음 날인 4일에도 2분 길이 온라인용 리포트를 만들어 보도했다.

문제가 된 행사는 SBS가 2일부터 사흘 동안 세 차례 보도한 ‘KBI컵 스키-스노보드 대회’다. 대한설상경기연맹이 주최한 행사로 박효상 KBI그룹 회장이 이 단체의 회장도 맡고 있다. SBS는 2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 행사를 30초 길이 단신으로, 이튿날 아침 방송에서는 1분 길이로 보도했다. 이미 행사가 끝난 다음 날에는 2분 길이로 온라인 기사를 내기도 했다.

양 본부장은 기자협회보에 “SBS가 2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을 중계하지 못했는데 류 위원장이 안타까워하면서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며 “그 과정에서 설상경기연맹 리그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또 “보도 요청이나 압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며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까지 청탁으로 규정하면 어떻게 취재, 보도 하겠느냐”고 말했다.

양 본부장은 심의기관장과 사적 만남이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류 위원장과 잘 아는 사이”라며 “지난해 말 보도본부장에 취임했으니 기관장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교환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업무”라고 답했다. 그는 “만난 사람이 누구냐보다 들은 얘기가 취재할 만한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보도편성위에서도 앞으로 잘 새겨듣겠다고 하고 끝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도 가치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한 일간지 스포츠 기자는 “보통 설상 종목은 월드컵 세계선수권 정도가 기본적으로 다루는 선”이라며 “종합지에서도 여유가 없으면 이마저도 잘 다루지 않는데 방송사에서 카메라까지 대동해 이런 작은 대회를 세 번이나 보도하는 건 그간 지상파 스포츠보도를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특정 기업에서 주관하는 대회는 이해관계가 엮여 있지 않으면 단신 이상 비중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수익을 전액 기부한다거나 참가자 면면이 장애인이나 이주민인 등 공익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업체 행사는 박지성처럼 거물급 은퇴 선수나 현역 선수가 출전해야 보도된다”고 덧붙였다. KBI컵 대회는 종편방송사들도 기사화했지만 단신으로 처리했다.

KBS도 대회 초반인 2월16일 이 대회를 저녁 메인뉴스에서 다뤘지만 류 위원장과 관계는 부인했다. KBS는 관련 질의에 “설상경기연맹으로부터 KBI컵에 대한 취재요청을 받았다”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중계방송 뒤에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KBS 기자 출신인 류 위원장은 YTN 간부로 재직하던 2011년부터 5년 동안 친누나의 식당과 부인이 운영하는 학교 홍보를 위해 여러 차례 방송을 사적으로 동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3년 9월 방심위원장이 되고는 가족과 친척을 비롯해 KBS 입사 동기 등 전 직장 동료들에게 시켜 방심위가 비판 언론을 징계하게 민원을 넣게 한 ‘민원사주’ 의혹을 받는다.

기자협회보는 류 위원장에게 KBI그룹이나 설상경기연맹과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지, 이전에도 다른 사안에 대해 방송사들에 관심 가져 달라고 한 적이 있는지, 업무 독립성을 지켜야 할 방심위원장이 피심의 방송사에 부적절한 요청을 한 것이 아닌지 등 세 가지 질문에 입장을 구했다.

류 위원장은 질의 사흘 만인 27일에야 방심위 홍보팀을 통해 “밝힐 입장이 없다”며 답변 거부 의사를 전했다. 그사이 대면 취재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류 위원장은 민원사주 의혹으로 13일 국회에서 사퇴 촉구 결의안이 통과한 뒤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전화를 차단했다. 사퇴 촉구안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