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혁명의 도화선, 3·15의거 유적지를 가다

경남·울산기협 주최 3·15의거 역사기행
"과거의 기억이 오늘의 민주주의 지킨다"

6일 한국기자협회 회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국립 3.15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총에 맞고 쓰러진 동료를 끌어안은 학생들, 분노에 찬 앳된 얼굴, 시위대가 던질 돌을 치마에 담아 옮기는 여성…. 1960년 3월15일 이승만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벌인 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의거가 석조 부조에 장엄하게 담긴 모습이다.

6일 한국기자협회 회원들이 경남 창원시 국립 3·15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경남·울산기자협회가 주최한 이번 기행에 전국에서 회원 3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협회는 전국의 민주화 운동 벨트를 잇기 위해 2·28민주화운동(대구)과 제주4·3, 5·18민주화운동(광주) 등 현장을 매년 탐방하고 있다.

“가운데 움푹 팬 자국은 무학초등학교 담벼락에 있는 총탄흔을 표현한 거예요. 총알 구멍이 머리와 배 높이에 있는데 도망치는 시위대를 조준사격 했다는 거죠.” 남기문 3·15의거 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참배를 마친 기자들에게 부조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이 3·15민주묘지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박 회장은 “3·15 영령들의 뜻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적었다. /한국기자협회

3·15의거는 한 달 뒤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부둣가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시에 묻혔지만 이곳에도 가묘가 있다. 남 이사는 “열사들이 짧게 살아 비문도 초라하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3·15 기념관을 둘러본 뒤 의거 발원지부터 시위대가 이동한 방향을 따라 유적지를 둘러봤다. 투표통지서를 못 받아 투표권을 뺏긴 야당 지지 시민들은 번화가였던 오동동 불종거리에 있는 민주당사 앞에 모여 부정선거를 규탄했는데 이것이 의거의 시작이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불종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상지에서 기자협회 회원들이 남기문 3·15의거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기행의 종점으로 김주열 열사가 사망한 지 27일 만에 발견된 부두도 찾았다. 시신을 발견한 시민은 경찰보다 앞서 기자들에게 이를 알렸고 허종 부산일보 기자가 경찰이 오기 전 몰래 사진을 찍어 보도했다. ‘4월 혁명 발원지’이기도 한 시신 인양지는 경남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언론인들은 의거 과정에서 보탬이 됐다. 전응덕 부산MBC 기자는 일련의 시위에서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시민들을 인터뷰해 방송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취재 방식이었고 특히 언론이 통제돼 있던 때여서 용기 있는 취재였다.

3·15민주묘지 안에 있는 기념관에 전시된 녹음기. /한국기자협회

나종훈 KBS제주총국 기자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어느 지역 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놀랐다”며 “‘그들의 피가 다 숭고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찬 전남일보 기자는 “3·15의거가 5·18에 비해 조명이 덜 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잊히지 않게 기자들 말고도 여러 지역과 계층에서 견학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현준 경남·울산기자협회장은 “3·15의거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이라며 마산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장소임을 역설했다. 이어 그는 “반세기 전 일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낯설지가 않다”면서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과거의 기억과 교훈이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리라 믿는다. 기자들이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배우고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7일엔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와 우리 안의 파시즘’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우리 민주주의는 3·15, 4·19, 5·18, 6·10 항쟁, 촛불로 이어지는 ‘연속 혁명’”이라며 “역으로 말하면 언제든 무너질 취약함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사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 게 아니라 전기 파시즘에서 후기 파시즘으로 이행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광장의 민주주의는 위대한데 일상의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며 가부장제와 갑질이 끊이지 않고 약자혐오와 우열경쟁, 권위와 굴종이 만연한 것이 파시즘, 즉 전체주의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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