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못 믿는 부모·아이돌보미, 뾰족한 방법 없는 정부

[지역 속으로] '빛 좋은 개살구 아이돌봄서비스' 취재기
김해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부장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의에 맞서 세상을 뒤집을 만한 특종을 터트리겠다는 큰 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 이야기, 내가 사는 이곳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小)망에서 출발했다.


‘빛 좋은 개살구 아이돌봄서비스’는 철저한 지역·생활 밀착형 기사다. 정부가 인증한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찾아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아이돌봄서비스’. 이용하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등 아이돌봄서비스 이용 허점을 6편의 기획 기사로 보도했다.

김해수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1월14일부터 1월22일까지 6회에 걸쳐 경남지역의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실태를 보도했다. 아이돌봄 서비스를 6년 동안 이용한 김민정(가명)씨 사례를 통해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가정이 겪은 어려움을 전한 시리즈 1편.

지난해 육아휴직 중 복직을 3개월여 앞두고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담당 센터로부터 대기 80가구, 예상 대기 기간 3개월이라는 답을 들었다. 결국 복귀 일이 지나도록 아이돌보미 매칭이 안 됐고, 전전긍긍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친정엄마의 결심으로 돌봄 공백 사태는 일단락됐다.


회사로 복귀한 후 한동안 자유롭게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2개월 꼬박 15개월 동안 아이 둘을 챙기기도 버거워서 뉴스는 챙겨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정해진 분야도 없이 기사를 써야 하니 막막했다. 그러다 초심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관심 있는 것.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답은 하나였다. 아이돌봄서비스.
문제의식은 명확했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갈 수 있는 주제라 다루기에 조심스러웠다. 먼저 경남지역 아이돌봄서비스 이용 통계를 알아봤다. 지난해 11월 기준 경남지역 대기 가구는 653가구, 대기 일수는 평균 57.8일로 적게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다. 앞서 보도된 다른 기사도 찾아봤다. 그동안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을 뿐 아이돌봄서비스 대기 문제를 꼬집은 기사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기사는 수도권 중심이었고 경남 통계와 사례를 다룬 기사는 없었다.


통계만으로 기사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조명받지 못한 이야기를 기사 한 편 또는 두 편으로 끝내면 금방 잊힐 것이 뻔했다. 독자들 마음을 움직이려면 더 생생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사례자 찾기였다. 경남지역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찾아봤지만, 기사에 담기에 마땅한 사례가 없었다. 다른 취재를 하며 일주일만 기다려보자 마음먹었다.

김해수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1월14일부터 1월22일까지 6회에 걸쳐 경남지역의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실태를 보도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아이돌보미, 돌봄노동자 이야기를 보도한 3편.

며칠 만에 접속한 커뮤니티에 아이돌봄서비스 관련 새 글이 올라왔다. 댓글도 달렸다. 반가운 마음에 쪽지로 메시지와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날 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기사에 나온 김민정(가명)씨다.


그는 6년째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인데 아이돌보미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 집안이 엉망이 됐다고 했다. 민정씨는 아이돌보미 없이 2주를 버텼지만, 이제는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민정씨는 통화 끝에 “사실 저는 아이들 많이 키웠어요. 1~2년만 버티면 저희 손이 많이 필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요?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 하잖아요. 여성가족부에 전화를 해도 하나도 바뀌는 게 없어요. 기자님이 기사 잘 좀 써주세요”라고 했다.


민정씨 외에도 댓글을 단 몇 명의 이용자와 통화를 했다. 실제 이용자와 대화해보니 대기 문제 외에도 아이돌보미 전문성 문제, 카톡방 블랙리스트, 이용액 지원 시간 부족, 정서적 학대 위험 등 다양한 문제가 산재했다.


이용자 측 설명만 들었을 땐 전문성과 책임감이 없는 아이돌보미 문제가 컸다. 돌보미들은 할 말이 없을까? 서비스 최전선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아이돌보미 사정도 들어봤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경남본부 측에 요청해 아이돌보미를 소개받았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아이돌보미는 16년 경력 베테랑이었다. 아이돌보미 역시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임금, 고용 불안 등 전문성이 쌓일 수 없는 구조를 지적했다.


특히 이용자와 돌보미를 취재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허술한 제도 탓에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이용하는 두 주체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공성을 지키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남도 역시 정부 정책임을 강조하며 도민을 지원하려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애를 쓰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방향성을 검토해야 하지만 큰 틀은 손대지 못한 채 자신들의 진심만 호소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김해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부장.

마지막 편에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예산을 무한정 쓸 수 있다면, 그것을 가정한 아이디어는 내놓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합의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 점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이용자와 돌보미, 전문가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독자들에게 결말의 공을 던졌는데, 힘이 빠진 감은 어쩔 수 없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아이돌봄서비스’라는 주제가 얼마나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보도 이후 쏟아진 관심에 놀랐고, 지역 기자로서 내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소외된 지역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그러모아 알리는 일, 지역 기자 몫이겠다. 초심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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