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능 프로그램 SNL에서 패러디 하나가 논란이 됐다. 대상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배우 김아영이 한강의 대역을 맡은 인터뷰 장면에서 보인 다소 과장된 연기가 문제가 됐다.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처음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어요.” 움츠린 자세와 실눈, 나긋한 말투 등 작가 특유의 모습을 흉내낸 멘트에는 “작가의 외모와 목소리를 조롱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흥미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적 인물을 패러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노벨 문학상을 탄 인물을 따라하다니….’ 같은 상의 권위를 내세우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SNL에서 꾸준히 정치인이나 범죄자 등을 날카롭게 풍자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번 패러디는 아쉬웠다. 특히 패러디가 신체적 조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데 그칠 뿐, 작품 세계와 같은 본질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외모 외에는 한강을 패러디할 요소가 빈곤했음을 제작진 스스로가 시인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온 것은 한강 인터뷰 이후에 나온 ‘과시용 독서’에 대한 비꼼이었다. ‘MZ 세대의 한강 신드롬’이라는 자막과 함께 나온 뉴스 리포트에선 노벨 문학상을 탔다니까 무작정 한강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풍자한다. 이들은 웃돈을 얹어 한강 중고 서적을 거래하고, 책을 읽기보다는 인증샷을 올리는 데 바쁘다. 독서 모임에선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적어도 육식주의자는 아니겠구나”, “소설이 영어로 ‘Novel’이라 한강이 노벨상에 걸맞는다”는 등 무식한 의견이 오간다. 원래는 책 한 권 안 읽다가 그저 유행이라니까 따라하기 바쁜 세태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유행에 힘입은 독서더라도 뭐 어떤가. 원래 책 한 권 안 읽었어도 이번 기회로 독서에 취미를 붙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설령 진득한 취미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독서를 친근하게 여겨서 나쁠 것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 독서율(1년 내 종이책·전자책 등 1권이라도 독서한 비율)은 43%로 역대 가장 낮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 동안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독서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누구나 작가나 출판사 직원은 아니기에 24시간 읽는 행위에 몰입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잠깐의 여유 시간에 휴대폰 쇼츠 대신 가방 속에서 자그마한 책 한 권을 꺼내는 풍경이 늘어난다면 그 또한 낭만적일 것 같다. SNL의 성급한 풍자가 아직 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미약한 ‘독서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까 두렵다.
‘텍스트 힙.’ 읽는 행위를 멋지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독서 경험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독서에 술 한 잔, 커피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책바’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엄격하고 진중한 독서만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는다. 소설가 황석영은 8월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책 읽는 게 운동하는 거하고 똑같다. 작은 아령부터 시작해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독서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많은 이들의 독서 근육을 깨워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독서의 질과 진정성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