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광범위하게 제작·유포되며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심지어 딥페이크 범죄를 취재·보도하는 기자들까지 피해 대상이 됐다. 딥페이크 영상 제작·유포는 그 자체로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지만 기자를 대상으로 한 행위는 언론 감시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더 불순하다. 한국여성기자협회와 한국기자협회도 성명을 내고 “여성 기자들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외부 위협에 대한 대응만으로 과연 충분한가. 참담한 현실이지만 이런 성 비위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앞서 6월 남성 정치부 기자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동료 여성 기자들에 대해 외모 품평과 성적인 조롱 등을 일삼은 사건이 가까운 사례다. 소속 언론사가 가해자들을 중징계하고 기자협회도 영구 제명하는 등 처벌이 있었지만, 기자실 옆자리 동료로부터 모욕 받은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8월21일 미디어오늘 보도로 밝혀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성희롱 의혹은 분노마저 부른다. 해당 위원은 국가정보원 직원과 여성 기자들의 사진을 주고받으며 음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조선일보는 증거 수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일주일 이상 방치해 조직 구성원을 두 번 상처 입혔다.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계의 성 비위는 성차별부터 성희롱, 성추행까지 범위가 넓고, 덜 알려진 사건까지 포함하면 발생도 꾸준하다. 성범죄를 보도하는 우리 내부에서조차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문화가 만연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사는 딥페이크 등 외부 범죄에는 강력히 대응하는 반면 내부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외부 사건은 사회 구조적 문제로 판단하면서 내부 문제는 소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있어서다. 명백한 이중 잣대다. 이런 분위기가 유사 사건을 반복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우선 우리는 스스로에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선후배와 동료를 대상으로 하는 성 비위에 대해서는 경중을 따지지 않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단해야 한다. 법적 처벌이 어렵다면 윤리 강령 등을 토대로 적절한 내부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일부는 과잉처벌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기자들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책임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한 명의 일탈이 언론계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 제재의 노력도 고민해볼 만하다. 문제가 반복되는 언론사에는 기자협회 차원의 패널티를 주는 방안 등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업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문화를 함께 벗어나야 한다. 조선일보 노조 한 조합원은 최근 논설위원 성희롱 의혹 사건을 두고 “평소 강간문화가 용인되던 우리 조직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강간문화란 성범죄에 적극 대처하지 않거나 성차별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둔감한 문화를 일컫는 용어다.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운 조직은 몇 곳이나 될까. 변화는 개인, 조직, 사회가 함께 움직일 때 이뤄진다. 우리 모두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 내부의 적과 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