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신임이사 6명에 대한 임명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등 대통령이 임명한 상임위원 2명만이 방문진의 새 이사를 결정한 건 법률적 다툼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권태선 이사장 등 현 이사들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위를 유지한다. 전 정권이 임명한 방문진 이사들을 몰아내 내심 정권에 비판적인 MBC 경영진을 교체하고 싶었던 윤석열 정부의 무리수가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만일 본안 소송에서도 방문진 이사 임명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2인 체제 방통위가 의결한 KBS 새 이사진 추천 등의 결정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1년 이상 2인 체제로 운영돼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최민희 후보자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보이콧하면서 대통령이 지명한 방통위 상임위원(위원장 포함) 2명이 주요 현안을 심의·의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편법 논란이 컸지만, 여야 모두 정파적 셈법에 정상적인 합의제 구조를 만드는 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방통위는 2인 체제로 YTN 최대주주 변경,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등 논쟁적 안건들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정치권 모두 방통위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 법원이 2인 체제하에 이뤄진 권태선 이사장 해임이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서 권 이사장을 복귀시켰는데도 이를 본체만체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더 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법원은 2인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방통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상임위원 2명만으로도 심의·의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공익성, 국민의 권리보호와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방통위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고 못박았다. 방통위가 의결 정족수를 ‘5인 중 3인 찬성’이 아니라 ‘재적 위원 과반 찬성’이라고 규정한 방통위법의 허점을 악용해 2인 체제로 운영하는 데 대해서도 “(방통위법은) 기본적·원칙적으로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회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2인 체제의 위법성을 분명히 하고 방통위를 정상적인 합의제 구조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법원은 방통위의 운영 원리를 ‘합치(合致)의 원리’라고 정의했다. 의견이 맞을 때까지 치열하게 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라는 것이다. 방송의 공공성, 정치적 독립성은 민주주의 체제의 요체다. 이런 점에서 법원도 방송통신정책을 관할하는 방통위의 거버넌스를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로 만든 입법자들의 취지를 중시한다는 점이 이번 결정으로 다시 확인됐다.
해체론까지 나오는 방통위의 난맥상은 근본적으로 공영방송을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기고, 정권을 잡을 때마다 ‘제 사람 심기’에만 열중하는 정치권의 욕심 때문이다. 여야의 정치적 대립구도가 방통위의 의사결정 구조에 반영되지 않도록 최대한 정치색을 빼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정권을 잡을 때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장하며 방통위를 장악하려는 집권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치권의 살풍경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