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는 어떻게 1년 만에 '방송장악 첨병'으로 전락했나

방통위 둘러싼 언론탄압 논란…
전·현직 위원장들 행적 살펴보니

취임 사흘 만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또다시 업무 파행 사태를 맞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방송장악의 첨병’으로 전락했다는 지탄을 받으며 정쟁 한복판에 놓인 방통위가 언제쯤 정상 운영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방통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러 언론탄압 논란과 함께 전·현직 방통위원장들의 주요 행적들을 정리했다.<편집자 주>

방통위는 법상 방송의 독립성이 명시된 합의제 행정기관인 만큼 방통위원장 또한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역대 방통위원장들(직무대행 포함)은 공영방송 이사 해임, TV 수신료 분리고지, YTN 지분 매각 등을 강행하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윤 대통령은 방통위 수장 자리에 중립성과 무관한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이동관), 검사 선배(김홍일), 대선 캠프 출신(이진숙) 등을 차례로 임명해 언론계 반발은 증폭됐다.


윤 대통령이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하면서 방송사 압박의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정부·여당에서 끊임없이 사퇴 요구를 받아온 한상혁 전 위원장이 지난해 5월 TV조선 재승인 점수 고의감점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자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을 면직 처분했다. 임기가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2022년 6월 감사원 감사를 시작으로 검찰 압수수색, 국무조정실 감찰, 대통령실 감찰 등 그간 방통위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있었고, 재승인 점수 고의감점 의혹으로 결국 방통위 담당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며 사실상 ‘한상혁 찍어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김효재 직대 체제 이후 공영방송 장악 가속 페달

한상혁 위원장이 직을 잃으며 당시 방통위 상임위원은 여야 2대1 구도로 3인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여권 우위로 재편된 방통위는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 교체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전임 정부 때 출범한 야권 측 인사가 과반인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여권에 유리한 구도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김효재 직무대행 방통위는 지난해 7월12일 윤석년 당시 KBS 이사를 해임한 데 이어 그해 8월14일 남영진 KBS 이사장을 해임했다. 야권 추천 이사 2명의 해임으로 생긴 빈자리에 곧바로 황근 선문대 교수와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며 여야 4대7 구도였던 KBS 이사회는 여야 6대5로 재편됐다. 9월30일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한 KBS 이사회는 그해 11월 박민 사장을 임명제청하며 경영진 교체까지 완수했다.


같은 시기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도 정조준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당시 야권 측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을 결정했지만 그해 9월 법원의 해임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권고 한 달 만에 전기요금과 TV수신료 통합고지·징수를 금지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 것도 김효재 직대 체제에서 이뤄졌던 일이다.


‘언론장악 기술자’로 불리며 방송사 종사자들의 거센 반발 속 지난해 8월28일 취임한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취임 당일 야권 측 김기중 방문진 이사를 해임했다. YTN 민영화 작업도 발 빠르게 진행했다. 유진이엔티의 YTN 최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 하루 만에 심사기본계획을 의결하고, 열흘 만에 심사를 마쳐 ‘졸속·부실 심사’라는 비판을 샀다. 탄핵소추안 표결 처리를 앞두고 자진사퇴한 이동관 위원장의 바통을 넘겨받은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지난 2월 유진이엔티의 YTN 인수 승인을 의결하며 YTN 민영화 작업을 끝마쳤다. 김홍일 위원장 체제 방통위는 야당의 반대 속에서도 KBS·방문진·EBS 공영방송 이사회 전면 교체를 위한 신임 이사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이사 해임 시도가 사실상 실패로 끝난, 야권 이사가 다수인 방문진을 겨냥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김홍일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발의된 다음날인 6월28일 방통위는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를 열어 KBS·방문진·EBS 이사 선임 계획을 기습 의결했다. 마지막 임무를 마친 듯 회의 직후 기자들과 악수를 나눈 김홍일 위원장은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보고 전인 7월2일 자진사퇴했다.

방통위, 1년째 ‘2인 체제’ 파행… 2인 위원으로만 100여건 의결

문제는 방통위의 이 같은 주요 의결 대부분이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 부위원장 2명으로만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이다. “합의제를 망각한” “정권의 무법적인 방송 장악”이라는 언론계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인 체제 의결 위법성’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주요 사유이자, 잦은 방통위원장 교체의 배경이기도 하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인의 합의제 행정기구로,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여당이 1명, 야당은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하지만 5인 위원 완전체로 방통위 전체회의가 열린 건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전인 지난해 3월21일 회의가 마지막이다.


특히 지난해 8월23일 당시 김효재 직무대행, 김현 방통위원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부터 1년 가까이 방통위는 ‘2인 체제’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이상인 부위원장 겸 직무대행이 탄핵안 처리 전 7월25일 사퇴하면서 방통위는 일시적으로 ‘0인 체제’가 된 초유의 상황도 생겼다. 윤 대통령이 7월31일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을 임명하며 2인 체제로 복원됐다. 하지만 지난 2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진숙 위원장 업무가 정지되면서 김태규 직무대행 ‘1인 체제’로 사실상 아무런 안건도 처리할 수 없는 상태다.


민주당은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며 김홍일 위원장 재직 당시 6개월 동안 2명의 위원만으로 70여건의 안건을 의결했고, 이동관 위원장 때에도 약 3개월 간 2인만으로 30여건의 안건을 의결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방통위가 2인 체제로 48일간 운영되었던 사례가 2017년에 있었는데, 그 당시 김석진·고삼석 위원 2인은 안건을 단 한 건도 의결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공석인 국회 몫 방통위원 추천 논의가 중단된 건 윤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안형환 전 부위원장 후임으로 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방통위원 후보 임명을 거부한 이후부터다. 당시 민주당은 최민희 방통위원 추천안을 의결해 본회의까지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은 7개월 넘게 재가하지 않았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 임명은 보류하면서 그 사이 윤 대통령은 그해 5월 김창룡 전 위원(대통령 몫) 후임으로 이상인 위원을 지명했다. 그렇게 방통위원 세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2인 체제’의 악순환은 지속됐다.


‘이동관-이상인’, ‘김홍일-이상인’으로 이어진 ‘2인 체제’는 이진숙 위원장 탄핵안 가결로 김태규 위원장 직무대행 1인 체제가 됐다. 다만 이진숙 위원장은 직무정지 상태로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 앞서 2인 체제의 위법성을 확인한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권태선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후임 김성근 이사 임명 처분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며 “단 2명의 위원들의 심의 및 결정에 따라 이루어져 방통위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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