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피' 시대를 위한 조건

[이슈 인사이드 | 경제]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코스피가 최근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국내 증시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코스피 3000 포인트 돌파를 의미하는 ‘삼천피’도 어렵지 않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이와 동시에 일각선 국내 증시 훈풍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오히려 코스피가 떨어질 것이라 보고 국내 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코스피를 일시적 유행을 넘어 대세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1997년 외환위기 때 등장한 단어다. 당시 미국 자산운용사 달튼이 한국은 낮은 경영 투명성이 기업 가치를 낮춘다며 부끄러운 낙인을 새겼다. 이로부터 무려 20여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이 단어는 여전히 글로벌 투자 시장에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실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일본 닛케이지수가 297%, 미국 다우지수는 271% 상승한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61% 상승에 그쳤다. 국내 기업의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과 폐쇄적인 거버넌스가 주된 문제로 여전히 지적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료약 중 하나로 최근 주목받는 것이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란 기업이 그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의미한다. 기업이 이를 스스로 공시하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성실공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지난 5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초기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당근 요인은 부족하고 기업에 족쇄만 채우는 요소가 많아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기 부족했다.


이에 정부는 최근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세제 인센티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며 다시 새로운 동력 확보에 나섰다. 밸류업 우수기업에 제공하는 세제 혜택과 이 기업들에 투자하는 주주들에게 제공하는 세제 지원 내용이 포함됐다.


기업들 참여를 유도할 정부 인센티브가 부족하고 개인투자자의 장기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밸류업이 시장에 공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


우선 공급자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을 위해 자발적 참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유인책을 이어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그동안 개선을 요구했던 상속세율 등을 밸류업 프로젝트와 묶어 한 테이블에서 논의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요자라고 할 수 있는 투자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회사의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중장기적 기업 가치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투자 핵심 근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성공 조건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기 진통제가 아닌 영양제라는 사회적 인식이다. 일관성 있게 일본처럼 최소 10년 이상 오랜 호흡을 갖고 정책을 이끌어 나가야만 보상이 이어질 수 있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누더기처럼 정책을 덧대고 정쟁에 활용하면 또다시 우리 코스피는 볼모로 잡힐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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