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과 방통위

[언론 다시보기]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사실’(fact)과 ‘진리’(truth)는 엄연히 다르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진리’는 무엇보다 시간의 개념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쉽게 말해 진리의 시제는 항상 ‘현재형’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진리의 시제는 언제나 ‘~이다’(is)의 형식을 취한다.


반면 ‘사실’은 시간의 영향력 아래 철저히 구속된다.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사실은 ‘과거형’으로 변한다. ‘~이다’(is)에서 ‘~이었다’(was)로 바뀌게 된다. 현실에서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이 대표적 예다. 때로 권력의 영향을 받는 역사적 사실은 누가 힘을 쥐느냐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조선에서 왕이 사초를 볼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대다수 권력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으며, 때로는 묻어버린다. 한마디로 사실은 권력과 투쟁 관계에 있다.


근대의 민주정치에서 권력과 거리를 두고 안정적으로 사실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한 존재가 언론이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주목했던 한나 아렌트는 언론이 확보하는 사실을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에서 언론이 밝히는 사실이 진리만큼이나 강고해야 함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아렌트는 오로지 제대로 된 사실이 공유될 때, 우리가 올바른 공적 토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집단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이 사실적 진리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 수단이라 강조한다.


그래서 언론이 만드는 ‘오보’는 때로 치명적이다. 우리 역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신탁통치 오보 사건은 단순한 좌우 입장의 대립을 넘어, 우리 사회를 감정적으로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떤 ‘오보’는 나라 전체를 깊은 슬픔에 빠뜨리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 사건이 그렇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11월 방송기자연합회에서 펴낸 보고서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은 말한다. “세월호 보도 참사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 자막에서 시작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필자는 학교에서 3시간 연강 수업 중이었다. 수업 시작 전 ‘전원 구조’ 보도를 확인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심했던 마음은 수업 이후 확인한 사실에 무너져 내렸다. 유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오보’ 뿐만이 아니다. 같은 세월호 보도 참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때로 시의적절하지 않은 보도는 사회적 패륜으로 이어지고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MBC는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보험금을 계산해 보도해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MBC는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민간잠수사가 사망한 사건의 원인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리는 보도를 내보내 일선기자들이 반발하는 일까지 있었다. 참사 이후 희생자 유가족들에 대한 분노 혹은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보도였다.


그런데 이보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본부장으로 앞서 언급한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 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진숙 후보자는 2019년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세월호 참사 언론 책임자로 공개적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더하여 이진숙 후보자는 이명박 및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은밀하게 ‘MBC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발각된 경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설치한 보안 프로그램을 통해 MBC 직원들을 사찰하여 대법원에서 불법으로 판결한 이력까지 있다.


언론 윤리 차원에서 본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최악의 인물이 방통위원장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권력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MBC의 민영화와 방송장악을 위해서다. 이 종말적 사태의 시작에는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인해 불거진 사실의 확보 문제가 있었다. 우리 삶의 기본 토대인 ‘사실적 진리’의 확보가 위험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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