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보도에 협박·괴롭힘… "기자 혐오 적극 대응해야"

'넌 평생 건강할 것 같지?'… 악성 댓글·이메일 고통
"기자 괴롭힘, 정당한 비평 아닌 혐오"

최근 수개월 동안 A 기자는 일상적으로 협박에 시달렸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과 관련한 기사를 쓰면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너는 아프지 마라. 평생 건강할 것 같지? 병원에서 환자 대 의사로 만나지 말자. 얼굴 사진이랑 이름을 똑똑히 봐 뒀다. 10년 뒤에라도 기억하겠다….’ 성별과 관련한 모멸적인 표현과 욕설을 담은 이메일도 밀려들었다. A 기자는 경찰에 신고하려 댓글과 이메일을 모아뒀다.


B 기자도 섬뜩한 이메일을 몇 번씩 받았다. ‘병원 오면 잘해줄게.’ 차마 가지고 있을 수 없어 받을 때마다 지웠다. “직업윤리 때문에 의사는 정치적이거나 다른 의도 없이 환자를 환자로만 대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어요.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이름을 걸고 보도해야 하니까. 병원에 가면 제 개인정보가 다 조회될 거잖아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의사들이 한국 의료를 향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정갈등을 보도하는 기자들이 ‘온라인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괴롭힘은 협박 외에도 조롱과 폄하를 섞은 욕설이 주를 이룬다. 의료에 대해 ‘잘 모르면서 건방지게 무식한 내용을 쓴다’거나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출입기자단과 한 만찬을 빗대 ‘김치찌개, 계란말이 먹었느냐’고 모욕하는 등이다.


피해 기자들은 가해자를 의사 집단으로 추정한다. 거친 댓글을 단 이용자의 댓글 이력을 열어보면 다른 주제 없이 의정갈등 관련 뉴스에만 반응했거나 댓글 내용에 보건의료 전문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조회수가 갑자기 뛰거나 댓글이 집중적으로 달리면 의사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좌표가 찍혔다(비난 동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언론인 괴롭힘을 수년째 연구해 온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괴롭힘의 본질은 언론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혐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당한 비평이나 비판은 상대가 나아지길 바라지만 특정 집단이 반대편이 사라지길 바라며 공격하는 행태는 혐오”라며 “이런 괴롭힘은 인격 살인이자 사실상 온라인상의 실력행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4월9일 당선인 신분이던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글. 기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문제는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언론을 공격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4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C 기자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병원 내 다른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에 “이 사람 제정신입니까?”라며 “별 XXX를 다 봅니다”라고 적었다. 해당 기사에는 댓글이 300여 개가 달렸다.


김 교수는 이른바 이런 ‘공개 저격’에 대해 “정치적으로 양극화한 정치인들이 혐오를 부추기기 위해 많이 해왔던 전형적인 일”이라며 “지지자들을 동원하거나 공격에 가담하라고 보내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협이라면 의사들에게 명시적으로 자제를 당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함께 연구를 수행한 신우열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혐오는 보도를 잘한다고 해소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며 “어떻게 쓰든 혐오를 당한다면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노력해서 해결될 여지가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더 잘 써야겠다’가 아니라 무난한 주제만 고르거나 보도를 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기자들이 괴롭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 문제도 있다”며 “지금은 기자 개인이 알아서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사나 언론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기자를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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