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된 전통이 살아남는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예쁜 오방색의 조화는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한국 단청만의 특징입니다. 고운 색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만난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씨(26)는 기자에게 한국 단청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수자는 무형문화유산 보유자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무형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이를 말한다. 그는 ‘한국 단청만의 특별한 매력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용 문양과 금색, 청색 계열을 주로 쓰는 중국 단청과 달리 한국 단청은 오색빛 영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씨의 단청 테이블 러너. 2008년 숭례문 화재를 보고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된 안씨는 젊은 감성으로 단청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유진 제공

안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2008년 발생한 숭례문 화재를 본 뒤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숭례문 앞에서 금은방을 하시던 아버지 덕에 늘 드나들었기에 그곳의 석재도 단청도 익숙했다고 한다. ‘친구’와 같던 건물들이 화마(火魔)에 한순간에 망가지는 것을 본 뒤 마음이 아팠다. “방송 중계로 건물 현판이 떨어지는 걸 보는데 ‘그럼 저런 문화유산은 누가 고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대학에서 디자인과를 전공한 뒤, 마음 한구석에 품던 꿈을 찾아 2019년 한국전통문화대에 진학하게 된 이유다. 디자인을 공부할 땐 간단하게 컴퓨터로 선을 그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장척(긴 자)을 대고 직접 선을 그어야 한다. 동글동글한 단청 문양인 ‘고팽이’를 3000~4000개씩 그리는 연습을 할 때면 팔이 빠질 것 같지만 그는 “이 길에 들어선 것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했다.


안씨는 날로 ‘힙한 것’을 찾아 헤매는 요즘 세대들에게 전통의 힙함을 알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단청 작업 과정을 빠르게 감아 ‘릴스’로 올리고, 신발이나 테이블 러너처럼 커스텀이 가능한 상품에 단청의 고운 무늬를 입혀 홍보한다. 누군가는 문화유산의 순수성 또는 진지함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전통이 의미가 있을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변주되어 가는 모습 자체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전통의 일부분이다.

유기장 이수자의 ‘윤슬 굽접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방짜유기장의 길을 걷고 있는 이씨는 식기와 인테리어 소품 등 유기의 활로를 넓히고 있다. /이지호 제공

뜨거운 불에 달군 놋을 망치로 때려 제작하는 방짜유기도 시대에 맞춘 변신의 기로에 있다. 유기장 명예보유자인 할아버지 이봉주 선생의 뒤를 이어 3대째 가업을 계승하는 유기장 이수자 이지호씨(38)는 “예전에는 혼수품으로 대야랑 요강 같은 생활용품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이것만 제작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했다”라며 “그렇지 않은 지금은 유기의 활로를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는 온갖 대학생들이 데모에 활용하던 징과 꽹과리가 인기였다. 지금은 고급 식기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씨는 미슐랭 한식 레스토랑과의 협업, 인테리어 소품 제작 등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을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봉주 선생 역시 손자에게 “새로운 걸 위해 늘 도전해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짧고 자극적인 것이 각광받는 요즘 길고 진득한 전통은 그저 옛것으로만 치부된다. 한 무형문화유산 보유자는 ‘어떻게 해야 무형문화유산을 오래 보존할 수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들이 전통을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제값을 주고 사서 써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호소만으로 사람들의 태도에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려는 문화유산 종사자들의 노력도 동반될 필요가 있다. 2030 문화재 이수자들의 새로운 시도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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