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릉 부와앙~ 모터바이크로 맺은 한·일 여성기자의 우정

[인터뷰] 유주희 서울경제 기자,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서울특파원

바이크 여러 대의 “부르릉” 엔진음이 겹친다. 서울을 빠져나와 강을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강원도에 이르러 갑자기 바람 냄새가 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바이크 그룹 두 번째 자리에서 베넬리 ‘임페리알레400’을 모는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은 요즘 이 느낌을 가장 좋아한다고 지난 7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일본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서울 안을 달리다 도로 끝에 산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나서 그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때마다 앞에선 SYM ‘울프125’를 탄 유주희 서울경제 기자가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각각 4개월차 초보 바이커, 10년차 베테랑인 두 여성 기자가 지난 봄부터 주말이면 함께 ‘라이딩’을 하는 모습은 이렇다.

지난 4월 라이딩을 떠난 유주희 서울경제 기자(오른쪽)와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서울특파원(가운데)이 강원도 춘천에서 일행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유주희, 와타나베 나츠메 제공

2023년 11월 와타나베 기자가 “책 읽고 친구가 되고 싶어 연락”을 한 게 시작이었다. 2022년 4월 서울특파원으로 부임해 새 정부 출범 후 잇따른 뉴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태원 참사 등을 챙기며 1년 6개월을 보냈다. “힘들어서 주말엔 그냥 자는” 나날이었다. 우연히 잡지에서 본 바이크를 탄 여성의 모습이 “멋있고 상쾌해 보여서” 실행을 결심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비용이 저렴한 한국에서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여성 라이더를 찾기 힘들었다. “주변을 봐도 배달 아저씨밖에 없어서” 인터넷을 뒤지다 유 기자의 바이크 관련 연재·책을 발견했다. 정독 후 지인을 통해 두 다리를 건너 전화번호를 얻었다.


“외국인이, (이륜차)전문지 기자도 아닌 사람이 연락한 게 신기했어요.” 잘 모르는 사람과 라이딩하거나 ‘입도바이’(오토바이 관련 대화) 하는 일이 익숙한 10년 경력자로서도 이 전화는 생소했다. 첫 만남에서 유 기자는 “겨울에 타면 위험하니 일단 면허를 따고 내년 3월쯤 중고매물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이러다 말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추진력이 엄청 났다.” 출근 전 학원수업으로 면허를 따오더니 네이버 카페에서 관심기종을 추려 알려왔다. 괜찮은 매물 3~4개를 골라주고 함께 날을 잡아 물건을 살핀 후 결국 타임라인대로 진짜 구매를 했다. 차량운행이 적은 청계천 주변 도로에서 진행한 첫 실전 라이딩은 이후 유 기자와 그의 바이크 친구, 동호회원과 경기도 양평, 파주, 강원도 춘천에 다녀오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유주희 기자가 레이싱수트를 입은 채 모터사이클 ‘원돌기’를 연습하는 모습. /유주희 제공

달리기 위해서, 동시에 멈춰서기 위한 도구로 바이크가 다가온 감각을 둘은 공유한다. 일본 요코하마 출신의 와타나베 기자는 2010년 교도통신에 입사해 후쿠이·나라·요코하마 지국, 오사카 사회부에서 경찰, 검찰, 행정, 재판, 문화재 등을 담당해왔다. 2020년 5월 특파원 발령 전 1년 간 어학연수를 하며 처음 한국에 거주했다. 조선학교와 차별문제, 한일 양국의 역사,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관심으로 특파원에 지원했고 취재차 북한에 다녀온 경험도 있다. “사회인이 된 후 주말에 일과 관련 없이 ‘어딜 가볼까’ 떠올려보는 즐거운 감각이 처음”인 그에게 바이크는 “바람과 냄새, 소리를 몸으로 느끼며” 한국을 체험하는 낯선 경험이면서 온전히 자신일 수 있는 순간과 맞닿아 있다.


유 기자도 “일단 타면 다른 건 못하고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감각, 풍경을 보며 멍 때리고 돌아보는 소중한 느낌”을 안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2008년 서울경제 입사 후 여러 부서를 거쳤고 현재 버티컬 2개 매체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던 2014년 ‘2종 소형’ 면허를 따 10년 간 거제도, 진도, 지리산, 강원도 정선 만항재, 안동 하회마을 등 방방곡곡을 보유한 3대 바이크로 오갔다. 태국, 포르투갈, 베트남에서 시승을 했고, “압도적이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샌디에고’ 코스도 다녀왔다. 이 우정을 가능케 한 6년 간 연재·단행본 저작, 현재 두 매체 기고도 바이크가 열어준 길이었다.

와타나베 나츠메 기자가 자신의 바이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와타나베 나츠메 제공

4살 차이 ‘여성 기자’이면서 ‘고양이’, ‘만화’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지만 바이크가 아니었다면 마주칠 일 없던 ‘언니’와 ‘나츠메 상’이 생의 한 교차로에서 만났다. 바이크가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 된 시기, 초보 바이커로부터 유 기자는 “처음 시작한 때”를 본다. 이 만남은 “어른이 된 후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은데 그래서 더욱 소중한 우정”(와타나베 기자)이면서 “바이크 용품을 보러 홍대 쪽에 갔다가 주한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진 츠케멘집을 소개받는”(유 기자) 것처럼, 최대한 지금을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두 바이커는 다시 달릴 꿈을 꾼다. 와타나베 기자는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건너가 한국 번호판으로 일본을 달리는 게 목표”라며 “일본인인데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고 싶다. 한 달에 900km씩 타고 있는데 부산까진 장거리 투어라 더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유 기자는 “국내든 국외든 최소 2~3주 정도로 길게 바이크 여행을 하고 싶다. 회사 다니면서는 1주 정도가 가능할 텐데 꿈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지금 같은 길을 함께 달린다는 게 중요하다. 바이크든, 생이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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