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편집국장', 병상에 누워서도 신문을 찾던 서양원을 기억합니다

故 서양원 매일경제 대표이사 추도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를 역임한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고문이 5월20일 별세했다. 향년 59세. 고인의 3년 선배로 매일경제에서 동고동락해 온 손현덕 매일경제 대표이사 부사장의 추도사를 싣는다.

고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

작년 8월31일 오전 11시30분. 한일관계 세미나를 마치고 하네다공항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저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서양원 대표였습니다. “손 선배 죄송합니다. 다시 대표 맡기게 해서. 저는 이제 좀 쉬면서 건강 추스르겠습니다.”

몇 초간의 침묵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렇게 아프니.” “아닙니다. 잘 회복해서 돌아오려고요.”

대부분 제자리를 서 대표에게 넘겨주다가 처음으로 제가 서 대표의 일을 맡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3년 선후배 사이로 뉴스 현장을 같이 뛰어다녔고 청와대 출입기자, 경제부장, 산업부장 등 주요 데스크를, 그리고 편집국장과 편집담당 임원, 마지막으로 대표 자리를 넘겨줬는데 이제 거꾸로 제가 그의 자리를 안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같이한 세월과 추억이 셀 수 없이 많기에 지금의 이 상실감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아픔과 슬픔을 억누르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서 전 대표의 삶과 업적을 되새기며 그가 매경에 남긴 유산을 마음에 새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예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사랑하는 후배 기자이자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한 언론인, 그리고 한 가정의 존경받는 가장이었던 서양원 전 대표를 저의 제한된 기억을 소환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간직하고 있는 서 전 대표와의 소중한 많은 추억들 중 아주 작은 편린일 것입니다.

저는 먼저 그가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 기억납니다. “기자들의 정성이 1등 매경을 만든다.” 매일매일 만드는 신문에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은 우리 업의 기본이지만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서 전 대표는 이 말을 몸소 실천한 언론인이었습니다. 그의 정성이 고품질 매일경제를 만들었습니다. 경제현상과 정책에 대한 치열한 이해가 먼저였기에 그의 보도는 신의성실했으며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먼저였기에 그의 글에는 애정이 넘쳐났습니다.

서 전 대표는 혁신을 꿈꾸는 언론경영인이기도 했습니다. 매일경제신문이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24시간 깨어있는 미디어’로 혁신을 이루어내는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며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서 전 대표는 밖에선 투철하고 냉철한 직업정신을 갖고 사는 프로페셔널이었지만 안에서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애정을 가진 ‘울보 편집국장’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취재 중 폭행을 당했던 후배를 맞으러 공항에 뛰어나가는 모습에 회사 후배들은 우리가 그냥 일로 만난 직장인이 아닌 가족 같은 조직원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우리의 든든한 기둥이라 굳게 믿고 힘차게 뛰며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서 전 대표가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떠나던 날 매일경제 기협소식지 헤드라인은 ‘자기 자신보다 선·후배 그리고 매경을 더 사랑한 25대 편집국장 서양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엔 그토록 철저했던 서 전 대표가 왜 자신의 건강관리에는 좀 더 세심하지 않았는지, 왜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든든한 동료로 함께 해주지 못했는지, 왜 부인과 자녀들의 울타리로 더 오래도록 남아주지 못했는지 지금 이 순간 한없이 아쉽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8월의 기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가 대표를 물러나 처음으로 열리는 월요 실·국장회의였습니다. 저는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먼저 와 제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좀 휴식 취하고 오대산서 맨발 걷기하고 일은 손에서 놓는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회사 걱정이 앞섰던 모양입니다.

유난히 흰 그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이 목 끝에서 멈췄습니다. “아니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내 몸보다 중요해? 생명과 건강이 신문보다 중요해.” 이렇게 말하려다가 꾹꾹 눌렀습니다. 그 말이 오히려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 것 같았습니다.

그의 암세포는 이미 뼈로 전이돼 있었습니다. 그걸 뒤늦게 알고 의사의 조언을 들은 시점이 바로 8월입니다. 그 이후 올해 3월부터 몸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은 밤이 깊어질수록 심해져 잠을 이루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가까스로 잠이 들다가 다시 깨고 아침이 돼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부인에게 매일경제신문 좀 가져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아픈 사람이 신문은 무슨 신문”이라며 면박을 주면 서 전 대표는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 고통이 사라지거든.”

자신의 몸에 대해선 미련퉁이 같은 사람이라도 어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몰랐겠습니까.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새로운 처방을 시도해보긴 했습니다만 그를 데려가려는 하느님의 뜻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서 전 대표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주변 사람에겐 건강을 회복해 다시 매경으로 돌아가 이제 글 쓰면서 지낼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매경의 모든 동료에게 그의 열정과 헌신의 유전자를 심어주고자 한 것입니다. 삶이 아름다운 건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건 불멸이 아니라 필멸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이 세상에서 알았던 가장 아름다운 사람 서양원을 기꺼이 보냅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큰 사랑을 받으시리라 믿고 그의 영생을 기원합니다. 누구보다도 아픔이 크실 부인 이언아씨와 딸 수영씨, 아들 승현씨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 서양원을 기억해주시기 바라며 우리의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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