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수신료 분리징수 합헌... "공영방송 사망선고"

헌재 "분리징수로 재정적 영향 끼친다 볼 수 없어"
언론노조 "헌재, 시행령 정치에 정당성 부여"… KBS 사측 "헌재 결정 수용"

TV 수신료‧전기요금 분리징수를 명시한 방송법 시행령이 위헌이라며 KBS가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선고를 내렸다.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추진한 TV 수신료 분리고지·징수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KBS·EBS 등 공영방송에 심각한 재정 타격이 예상된다.

30일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5월 심판사건 선고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는 30일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규정한 방송법 시행령 위헌확인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징수 수탁자인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 고지 행위와 결합해 수신료를 징수하지 못하도록 규정할 뿐이고 수신료 금액, 납부 의무자 미납, 연체 추징금 등을 변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KBS의 수신료 징수 범위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그밖에도 “공법상 의무인 수신료 납부 의무와 상법상 의무인 전기 요금 납부 의무는 분리해 고지 징수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식”이라며 “30년 전 통합징수가 실시되기 이전과 달리 현재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각종 요금의 보증 및 납부 방법이 전산화 다양화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곧바로 KBS의 재정적 손실이 초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기각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KBS는 필요 시 수신료 외에도 방송 광고 수입이나 방송 프로그램 판매 수입,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하여 그 재정을 보충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심판 대상 조항(수신료 분리징수)은 공영방송의 기능을 위축시킬 만큼 청구인의 재정적 독립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이에 KBS는 해당 방송법 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했다. 그에 앞서 KBS는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상 40일 이상인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10일로 단축한 것에 대해 입법예고 공고 취소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번 헌재 선고는 KBS가 지난해 6월과 7월 냈던 두 헌법소원 사건이 병합돼 이뤄졌다. 헌재는 입법예고 공고 취소 헌법소원 청구에 대해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입법 예고 기간이 만료돼 종료됐고, 이미 입법 예고된 방송법 시행령이 시행돼 이에 대한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는 판단이다.

30일 헌법재판소 선고 직후 개최된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KBS본부, 언론노조 EBS지부의 기자회견.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지은 기자

이날 선고 직후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노조 KBS본부, 언론노조 EBS지부의 기자회견은 침통함을 넘어 참담함이 느껴졌다. 세 단체는 이번 헌재 결정이 “공영방송에 대한 사망 선고”라며 질타했다.

기자회견에서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서 수없이 진행됐던 시행령 정치를 헌법재판소가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수신료가 아니라도 광고를 할 수 있고 다른 재원이 있기 때문에 수신료가 분리 징수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수신료에 대한 철학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이 교체된 후 KBS 사측이 그동안 헌법소원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심지어 “중차대하고, 절체절명의 선고 날” 임에도 이날 박민 KBS 사장, 김유열 EBS 사장은 한국방송협회 세미나를 위해 제주도 출장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현 본부장은 “박민 사장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도, 탄원서조차 내지 않았다. 여론 환기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찾아볼 수 없다”며 “시행령 개정 이후 수신료 감소가 얼마나 됐는지 간단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에도 한 달이나 걸렸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부실 대응한 KBS 사측에 끝까지 책임을 물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박유준 언론노조 EBS지부장은 “TV 수신료는 어떠한 권력이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해날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면서 “정부 만행에 헌재도 공범이 됐다. 정부, 여당, 방통위, 헌법재판소까지 결탁해 대한민국 공영방송에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개탄스러운 건 이 상황에 대한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게 된다는 것”이라며 “수신료 납부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데 불편함과 혼란만 가중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KBS는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TV 수신료 분리고지가 본격 시행되더라도 국민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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