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닥친 소송·언론윤리 딜레마··· 선배라 생각하고 물어봐요"

[인터뷰] '언론인 무료 법률상담' 이혜온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반론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소송당하지 않기 위함’만이 아니에요. 취재의 핵심은 반론을 재검증하는 과정이거든요. 반론을 충실히 수용하면 언론분쟁의 큰 부분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만약 상대방 말이 정말 맞으면 저는 기사를 쓰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MBC의 5년 차 기자였던 이혜온 변호사는 ‘킬(kill, 기사화하지 않기로 함) 잘하는 기자’였다. 조직을 위해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어떻게든 일이 되는 쪽으로 궁리하는 편이 미덕일 테다. 하지만 기사는 당사자에게 미칠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기자가 전문직이라면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믿었다.

20일 서울시 중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이혜온 변호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박성동 기자

이 변호사는 2014년 법조계로 들어섰다. 언론 관련 사건을 여럿 맡았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대리하기도 했고 반대로 언론사를 변호하기도 했다. 10일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처음 도입한 사업인 ‘언론인 무료 법률상담·자문’을 맡았다. 이 변호사를 19일 법무법인 지평에서 만났다.

“언론 소송을 맡으면서 언론이 좀 더 자유롭고 책임 있게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보람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혜온 변호사가 법률상담이라는 수고를 자처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언론이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갖춘다면 ‘정당한’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와 언론사 사이 꼭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 변호사가 언론인을 도와줄 수 있는 문제는 폭넓다.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로 벌어지는 법적 분쟁은 물론 취재 때 맞닥뜨리는 딜레마 상황과 이메일이나 댓글로 가해지는 언론인 괴롭힘 문제도 상담해 준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아주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상담 비용은 언론재단에서 보전한다. 기자 1인당 연간 3회까지 자문을 할 수 있고, 취재된 내용을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가 법률상담에 나선 데는 언론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현실 인식도 영향을 줬다. 이 변호사는 “이전까지는 명예훼손이 주로 문제가 됐는데 요즘에는 초상권, 성명권, 음성권이 다 별개의 권리로 주장되고 있다”며 “법원도 이런 문제에는 언론에 더 엄격한데 이런 다발적인 권리 주장이 보도를 위축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공권력까지도 인격권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져 문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이주노동자의 인권변호사인 최정규 변호사는 경찰관이 비속어를 쓰며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신문 영상을 언론에 제보했다가 수사를 받게 됐다. 영상에 등장한 문제의 경찰관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침해됐다며 고소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의 공동변호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이듬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언론이 반론취재 노력을 하지 않는 점도 문제겠지만 권력이 반론 청구권을 남용하는 실태도 이 변호사는 칼럼 등에서 지적해 왔다. 정치인들이 “어차피 왜곡보도 할 것 아니냐”며 반론하지 않다가 보도가 나간 뒤에야 반론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이 정파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직자들도 자기 편이라고 느끼는 언론과만 인터뷰하려 한다”며 “반론취재에 응하지 않으면 반론 청구권 행사 요건을 제한한다든지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 출입기자를 하면서 “사건을 직접 매듭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번 새로운 사건을 좇기보다 적성에 더 맞았다. “시간이 걸려도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해결하는 게 잘 맞는 옷” 같았다.

그렇지만 변호사의 일이 기자의 일과 맞닿아 있다고도 생각한다. “의외로 변호사도 법리를 고민하기보다 사실을 수집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사실에 기반해야 설득력이 높아지니까요.” 그가 보기에 좋은 기자와 좋은 변호사는 비슷하다. 잘 설득하려면 오히려 상대 말을 더 잘 들어야 한다는 점도 닮았다.

이혜온 변호사는 스스럼없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들이 친근하게 생각하고 상담 받으라고 기자 출신 변호사에게 일을 맡긴 게 아닌가 생각해요. 회사 선배와 상의하기 어려운 것도 친한 선배한테 물어보듯이 연락주세요. 취재에 착수하는 단계에서도 문제가 있다면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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