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언론인 출신 12명이 처음으로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기자협회보는 이들 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은 이훈기·노종면·이정헌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3명을 이달 초 인터뷰했다. 국민의힘에서도 몇몇 당선인들이 거론됐으나 대다수는 과방위를 희망하지 않았고, 일부 당선인은 여러 차례 연락에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편집자주
이훈기 당선인은 지난 2월 노종면 당선인과 함께 언론계 인재로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다. 그는 iTV 재직 시절 노조위원장을 맡아 대주주와 회장의 방송 사유화를 막기 위한 투쟁을 이끌었고, 재허가 취소를 받아낸 이후엔 거리에서 풍찬노숙하며 노동과 자본, 시민사회가 결합한 OBS를 탄생시켰다.
언론인 경험 내내 방송 사유화에 적극 맞섰던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 개원 즉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3법을 수정 보완해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인은 “최근 모든 민주당 의원에게 대표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박찬대 원내대표에게도 얘기했다”며 “법안 준비는 거의 끝났고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2월 초 민주당 13호 인재로 영입됐다. 민주당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KBS가 정권으로부터 장악당했을 때 언론인들 사이에선 우리가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언론 개혁 진영이 옛날 같지 않고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여러 고민을 했던 거고, 그 과정에서 언론계 선후배들이 현실 정치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길 많이 했다. 밖에 있어 봐야 힘이 없다, 현실 정치를 해야 한다, 22대 총선에선 누군가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는 일종의 합의가 있었던 거다. 그동안 언론인 출신들이 수없이 정치권에 들어가 국회의원이 됐지만 대부분 언론계서 꽃길을 걷던, 잘 나가던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가서 자기 정치를 하다 당에서 이상하게 몰리고 논란의 중심에 선 경우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아예 언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이 들어가서 엄혹한 상황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후보론 많은 사람들이 거론됐는데 여러 이유로 다들 고사했고, 특히 지역 정치에 대한 부담이 커 결국 어느 정도 합의가 된 게 나와 노종면 기자였다. 그 과정과 민주당이 분야별로 인재를 영입하던 시기가 자연스레 맞아떨어져 나와 노 기자가 들어가게 됐다. 민주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한 건가.
“언론 쪽에서 누군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현실 정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저도 생각했다. 다만 누가 정치를 하느냐는 상당히 늦게, 거의 연말 가까이 돼서 정해졌다. 그러니까 거꾸로 된 셈이다. 먼저 정치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언론을 위해 고민하다 현실 정치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고, 그러면 누가 들어가느냐 했을 때 제가 그 역할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례대표 출마가 아닌 지역구 출마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우리끼리 현실 정치를 해야 한다고 논의할 때 지역구 출마에 대한 부담감이 다들 엄청났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안이 인천에서 500년 넘게 살았다. 지역 연고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인천에서 지역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이 조선 중기부터 530년간 인천에서 살았다. 인천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겠다.
“저는 사실 뼛속까지 인천 사람이다. 저희 할아버지가 인천 박문초 2회 졸업생인데 장면 총리와 죽마고우였다. 장면 총리의 영향으로 할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활판 인쇄술을 배웠고 그걸 계기로 활판인쇄소를 차리고 1945년 해방 직후 최초의 지역 일간지, 대중일보를 창간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셨다. 대중일보서도 20년간 편집부장을 했다. 아버지도 대중일보와 경기매일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는데 1973년 유신 정권에서 언론 통폐합을 하며 강제 해직을 당했다.”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을 것 같다.
“사실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사회로 나올 때쯤 내가 뭘 하는 게 제일 맞을까 고민하니 그냥 기자라는 직업이 제일 잘 맞을 것 같더라. 소신껏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기자 시절 우여곡절이 많았다. iTV 대주주와 맞서 싸우다 방송사가 문을 닫고, 힘들게 OBS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2020년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OBS는 내 청춘과 인생을 바쳐 만든 회사다. 민영 방송은 자본이 중심이 되지만 OBS는 탄생 과정이 노동과 자본, 시민사회가 같이 만든 방송이다. 초기엔 대주주와 신뢰 관계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깨져버렸다. 대주주가 아들에게 방송사를 물려줄 생각을 하면서 상대하기 힘든 사람은 견제하기 시작했고, 내가 OBS 있을 때 의정부로만 발령이 4번 났다. 의정부에서 근무한 기간이 7년은 될 거다. 그만둘 때쯤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후배들이 나에게 ‘항상 선배 때문에 대주주와 갈등이 있고 힘든 것 같다, 선배의 일은 아무도 관여할 수 없고 선배와 대주주가 직접 풀 수밖에 없다, 다시 우리의 고용까지 걸고 대주주와 싸울 순 없지 않으냐’고 얘기하는데 내가 거기 있기가 좀 그렇더라. 많은 사람이 OBS 만들 때 도와줬고 저 역시나 개국에 큰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나가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겠다.
“그렇다. 내 모든 걸 걸었던 곳이니까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단을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후배들을 위해 재송신료 문제를 해결하고 나갔다는 거다. OBS가 방송 권역이 아닌데도 서울에 방송이 나갔다. 방송이 나갔으니 케이블이나 IPTV로부터 재송신료를 받아야 하는데, 달라고 하면 우릴 빼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걸 내가 정책국장을 맡으면서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받아냈다. OBS가 항상 경영이 어려웠다. 재송신료 문제라도 해결했으니 후배들에게 빚은 없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재송신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면 매년 수십억 적자가 나서 이미 문을 닫았을 거다.”
-그만두고 나서는 어떻게 지냈나.
“2020년 말 재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대외협력 담당관으로 한 2년간 있었다. 당시 진화위의 핵심은 부산 형제복지원, 안산 선감학원 그리고 서산 개척단 등 집단 수용시설의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외협력 담당이었으니 홍보를 해야 했고 그때 내 목표가 전 국민의 40%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 규명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한 달 정도 각 언론사 기자부터 데스크까지 다 만나 사전에 자료도 주고 하면서 내 목표 이상을 달성했다. 당시 홍보가 왜 중요했냐면 피해자분들이 진실 규명을 바탕으로 또 소송을 해야 했다. 그러려면 사회적 명분이나 여론이 중요했기 때문에 홍보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여러 경력이 선거 운동에 도움이 되던가.
“노조위원장 할 때 사람을 많이 만났던 게 도움이 됐다. 기자들은 단순하다. 자기 위주다. 노조 활동을 하면 남의 얘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어려운 시기에 노조에 있으면 얘기를 다 받아야 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선거도 비슷한 것 같다. 유권자들의 여러 요구를 다 받아야 한다. 기자 생활만 했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노조위원장도 여러 차례 하고 iTV 없어지고 OBS 만들 때 3년간 풍찬노숙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선거 운동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선거 기간 여론조사서 상대 후보에 안정적으로 앞섰다. 당선을 예상했나.
“내 지역구는 여론조사를 많이 안 했다. 언론사들에 왜 안 하냐 물어보니 관심 지역도 아니고 경합 지역도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데 좋은지 나쁜지 모르니까 더 미치겠는 거다. 인천 남동을은 사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내리 3선을 했던 곳이다. 다행히 이번에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이 4번이나 당선될 수 있게끔 표를 주신 유권자들께 너무 감사하다.”
-총선에선 상대 후보와 큰 격차를 내며 당선됐다.
“사실 본선보다 경선에서 이긴 게 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영입 인재로 민주당에 들어갔는데 경선을 했다. 원래 영입 인재는 전략공천을 한다. 경선 방식도 당원투표 50%, 국민여론조사 50%였다. 영입 인재는 국민여론조사만 100%를 하는데 뒤늦게 경선을 한다고 해서 기존 경선 방식대로 간 것이다. 경선을 준비할 시간도 일주일밖에 없었고, 사실 당원투표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겼다. 영입 인재고 정치 신인이라 가산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이겼다. 놀라웠고, 그걸 보고 지역 정치와 당원 조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 그리고 영입 인재에 대한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사실 전략공천을 받은 정치 신인이 오면 낙하산이라는 인식이 있다. 경선을 거치면서 떳떳하게 본선을 갔고 그 힘으로 본선도 잘 된 것 같다. 만약 경선 없이 본선에서 이겼으면 끝나고도 후유증이 있었을 것이다. 지역에서 정치하기 좋은 기본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입 인재인데 왜 경선을 치렀나.
“민주당 영입 인재 1호가 박지혜 변호사인데 그분도 경선을 치렀다. 사실 처음엔 많이 고민했는데 경선 치를 당시에 당내에 공천 갖고 말이 많았다. 그래서 영입 인재지만 오히려 경선을 하면 당에 신선함이나 활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행히 성공적인 경선을 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민주당이 175석을 얻으며 대승했다.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국민들이 정말 절묘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에 200석을 주지 않았는데 그게 참 절묘하다. 정말 200석이 넘었으면 민주당도 교만해질 수 있었는데 양쪽 다 잘하라고 그렇게 준 것 같다. 민주당이 책임감을 느끼고 정말 잘 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론 정권 심판을 위해 여당은 벼랑 끝까지 몰아놓았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민생을 돌보라는 얘기 같다. 선거 운동을 할 때 유권자들이 말하는 게 너무 살기 힘들다, 지금 정권하에 내 삶을 지켜낼 수 없을 것 같다, 이러다 이 나라 후진국 될 것 같다, 다 이런 것들이었다. 정권 심판의 핵심은 결국 내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다 떠나서 민생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 같다.”
-조만간 국회가 개원한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일단 분야가 언론 쪽이니까 전문성을 갖고 준비하고 있고, 지역구 정치인이니까 지역을 챙기고 있다. 일단 언론 쪽은 시급한 현안이 몇 개 있다. 먼저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 3법의 재입법이다. 최근 모든 민주당 의원에게 ‘방송3법을 수정 보완해 대표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공영방송이 정권에 장악당하기 전 방송3법이 통과돼야 하므로 제가 추동해 가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박찬대 원내대표에게도 얘기했다. 법안 준비는 거의 끝났고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크다. ‘통과 6개월 후 시행한다’는 조항 등은 현재 의미가 없기 때문에 보완 수정해서 발의하려 한다.”
-상임위로 과방위를 희망하고 있다. 방송3법 외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나.
“지금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제기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검열 기구로 전락해 있다. 특히 요즘 방심위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심의를 검열처럼 하고 있는데, 두 위원회에 대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방심위의 경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규제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모든 기사 내용을 자기들이 판단해서 심의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규제를 제외한 심의 기능은 아예 빼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국회가 개원하면 이 부분에 대한 해법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당내 일부 의원들은 방통위원장 탄핵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얘기하고 있다.
“방통위원장 탄핵은 많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이동관을 탄핵할 때도 절차에 들어가기 전 새 사람이 임명됐다. 이번에도 또 그럴 수 있고,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탄핵하는 걸 유권자들이 어떻게 볼지도 고민이다. 생각을 많이 한 뒤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징벌적 손배제는 사실 언론계가 지금과 같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상당한 분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제도에 대해선 충분한 숙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갖고 의견을 모아 어느 정도 큰 틀의 합의를 하고 세부적인 걸 다듬는 과정을 가지려 한다. 내가 국회로 온 이유도 이런 문제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마디로 처참하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정책도 없고 관련 법도 지키지 않는다. 무슨 독재 정권 시대 같다. 옛날보다 더 교묘하게 기자들을 고소‧고발하고 압수수색하고 있다. 소송을 걸어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버팀목이 없으니 양심 있는 언론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정치권이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법적, 제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나.
“잘 모르겠다. 옛날에는 투사형 기자들이 많았는데, 사실 지금 세대 기자들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도 버팀목 역할을 해주지 않는데, 기자들에게 왜 옛날처럼 싸우지 않느냐고 하는 건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저는 같이 노력하고 서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은 그걸 하고, 기자들은 좀 더 양심과 정의를 지키면서 소신껏 일하면 될 것 같다.”
-정치적 롤 모델이 있나.
“인천 출신의 죽산 조봉암 선생을 정말 존경한다. 그분의 평전이나 책을 읽으면 어떻게 이 시대에 이렇게 진보적인 일을 했을까, 일생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봉암 선생처럼 선이 굵고 좀 걸쭉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그분을 되새기며 정치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초선 의원의 각오를 들려 달라.
“인재 영입될 때 제가 내세운 것이 행동하는 언론인이었다. 이제 정치권에 왔으니 행동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실천하고 제대로 일을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또 나이는 적지 않지만, 영입 인재 출신이고 신인 정치인이다 보니 신선하고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다. 한편으론 기존 당원들 위주의 지역 정치도 물론 중요하고 존중하지만, 새로운 지역 정치 문화를 만들고 그 흐름을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