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비해 기자들의 준비는 부족했다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끝났다. 그리고 기자들의 ‘자질’ 문제가 거론됐다. 당연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4·10총선 참패에도 국정 전환은 없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기자회견을 통해 윤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거란 국민의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반면 언론은 달랐다. 보수언론들마저 윤 대통령을 향해 기자회견을 주문해 왔다. 21개월 만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게 된 대통령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기자들의 행보는 다른 때보다 주목받을 수밖에 없던 행사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자회견에서 나올 질문과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예상이 됐다는 점이다. 언론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을 예측하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에 따른 모범답안까지 제시한 언론사도 있었다. 이런 빤한 기자회견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자들이 시험대에 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준비는 나름 철저했다. 기자회견을 정치와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4영역으로 분류해 민감한 질문의 수부터 줄였다. 외신과의 공동 기자회견으로 기획하면서 라인 사태 등 ‘외교참패’에 대한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외부 일정 없이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김건희 여사 특검에 반대하면서도 “(공수처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납득이 안 된다’라고 하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을 하겠다”라거나 “(배우자 문제로) 국민들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있다”는 발언은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감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전 독회 때 ‘사과’라는 표현은 없었다”며 보도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기자들의 준비성은 아쉽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문서답과 뭉개는 답변에 대처 방안부터 찾아야 했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사법 절차를 지켜보자’는 답변이 예견됐던 상황이라면, ‘사법 절차를 지켜볼 수 없는 이유’를 질문 속에 함께 거론했다면 답변도 달라졌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인지 시점과 대처에 대한 질문이 포함됐다면, 대통령실도 마냥 뭉갤 수만은 없지 않았을까.


기자회견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떠밀려 진행된 행사였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어느 정도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기자회견의 주제와 범위 그리고 재질문 수용 여부 등에 대해 협상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실이 재질문을 끝까지 거부했다면, 기자들끼리라도 다음 기자가 추가 질의를 하도록 약속이란 걸 해볼 수도 있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받아 든 낮은 성적표는 어쩌면 기자들의 낮은 결속력이 그 원인인지 모르겠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출입처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실과 관계가 틀어져야 좋을 게 없다. 과거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이나 대담에서 기자들의 표정이나 제스처까지 논란이 된 바 있다. 무엇보다 불편한 기사를 쓴 언론사나 기자를 향해 제대로 응징하는 정부가 아닌가. 하지만 이대로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100번의 기자회견을 연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기자 개인으로는 힘들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연대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MBC 바이든-날리면 사태 때 공동성명 이후 어떠한 움직임이 있었나.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들이 출입 금지당하고 고소·고발에 힘겨워할 때, 한목소리를 내왔던가. 이 대목이 가장 아쉽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라 하더라도 언론이 저 자세일 필요는 없다. 동등한 관계 속에서 협상력을 갖춘 카운터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유는 하나다. 작게는 기자라는 업의 특성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권력자를 향한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을 위한 공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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