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하 농민신문 기자의 바이라인 뒤엔 ‘전통주 소믈리에’라는 또 다른 명칭이 붙어 있다. 어딘가 술 고수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이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박 기자에겐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그러니까, 박 기자의 주량은 소주 3잔이다. 본인을 ‘알코올 쓰레기’(이른바 알쓰)라고 소개하는 그는 회사에서도 술 못하기로 유명한 기자였다. 그런 그에게 전국에 있는 주목할 만한 양조장을 직접 찾아 그곳에서 빚는 술, 양조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우리술 답사기’ 연재를 맡으라는 부장의 지시가 내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은 양조장 취재 가면 취해서 올 텐데, 술 안 좋아하는 박 기자는 딱 일만 하고 올 거 같아서.”
“못하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인 박 기자에게 술은 그렇게 격파해야 할 존재가 됐다. 무엇보다 술을 모르니 기사가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당시엔 우리술(주세법상 전통주를 포함한 우리 문화로서 향유하는 모든 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기도 했다. ‘우리술 답사기’를 연재한 지 1년이 지났을 즈음 전통주 분야에도 소믈리에 자격증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곧바로 수업을 등록했다. 3개월 간 ‘불금’을 반납해 전통주를 공부했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알쓰 기자’는 어느덧 술 전문 기자로 거듭났다. 8년차 기자로,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현재 우리술 답사기 연재를 73회까지 이어오고 있다. 양조장 탐방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는 전통주 시장을 정책의 관점에서 장기간 조명한 <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기획 보도로 지난해 11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악의 적”이라며 술을 미워했던 사람이 결국 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그 사이 “누룩을 더 알고 싶어서” 우리술제조관리사 3급 자격증도 땄다. 절기마다 술을 빚는 게 일상이 됐는데 “봄엔 죽순이 좋아서” 최근 아카데미 사람들과 죽순주를 만들기도 했다. 기사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유튜브 채널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내놓을 정도로 우리술에 진심이다.
박 기자가 최근 펴낸 에세이 책 <취할 준비>엔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우리술 관련 알찬 정보와 함께 자신을 둘러싼 술에 대한 단상이 담겨있다. 전통주, 와인, 위스키 등 국내 양조장에서 만든 90여개 술들의 맛과 만든 과정까지 빼곡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나온 우리술 관련 책 저자 대부분은 40~50대 남성이고, 20~30대 여성의 시선으로 본 책은 정말 적더라고요. 이 목소리를 담으려면 기존의 답사기 형태나 그동안 보도한 기사들을 묶어서 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술이 필요한 술꾼 도시 남녀들에게 공감을 부르는 에세이였으면 싶습니다. 우리술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가이드북 같은 역할이 됐으면 좋겠고요.”
책에는 각 지역 마을을 대표하던 양조장이 명맥을 잇지 못하고 문 닫는 안타까운 현실도 담겨있다. 국내 양조장, 전통주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박 기자는 이 산업의 가치를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다.
“일단 전통주 시장엔 젊은 청년들이 많이 뛰어들고 있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죠. 전통주를 단순히 소비만하는 게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 구독 서비스 등으로 색다르게 풀어가려는 노력을 업계 내에서 하고 있기도 해요. 위스키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지역 하나가 먹고사는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처럼 양조장을 사치재, 소비재 등 재화로만 보는 게 아니라 콘텐츠적인 가치로 끌어와 인구 소멸 지역이나 농촌 지역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