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뭘 잘못했나

[컴퓨터를 켜며]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를 어떻게든 막고자 지난 18일 대통령실이 낸 입장문을 본 적이 있는가. 봤다면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된 이 입장문에서 현 정부의 결기와 언론을 향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문을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보자.


먼저 첫 번째 문장이다. 대통령실은 “우리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거나 국세청을 동원해 언론사 세무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검찰이 종종, 어쩌면 자주 언론사 사무실과 기자들 주거지를 압수수색한 적은 있다. 혐의와 관련한 특별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압수수색을 남발해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한 적은 없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언론사 세무사찰 역시 마찬가지다. 국세청이 지난 2022년, 평소와 달리 좀 더 강도 높게 MBC를 조사한 사실은 있다. MBC가 국세청에까지 공식 질의해 세금을 납부했건만 갑작스럽게 52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 당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쨌든 ‘정기 세무조사’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대로 “그럴 의사나 시스템”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장이다. 대통령실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대통령실은 특정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강압과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와 감사원, 국세청, 서울시, 경찰, 검찰 등 수많은 정부기관과 수사기관이 공영방송을 상대로 조사와 감사를 벌이고, 최근엔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까지 나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결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진 않았다.


그런 때가 있었다 해도 어떤 강압이나 압력을 행사하려는 차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임기가 보장된 방통위원장과 KBS 이사장의 해임안이 올라오고, 대통령이 이를 기다렸다는 듯 재가한 적은 있어도 어쨌거나 해당 기관의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이었을 테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했다고 출입기자단에서 퇴출하거나 전용기에 기자를 태우지 않은 것도 압력 행사라기 보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보여주기 위한 어떤 결기였을 것이다. 문제의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을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고발한 것 역시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그런 거짓 입장문을 낼 순 없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문장이다. 대통령실은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고 밝혔다. 실제 대통령실은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있다. 해석상 이견이 있긴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해 공영방송을 축소하는 시도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위헌과 위법 논란에도 ‘가짜뉴스’ 대책을 추진하는 등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있다.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대우

언론을 존중하는 태도 역시 백미다. 행여나 기자들이 출근길 문답이나 기자회견 과정에서 국민들 감정을 거스를까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할 수 있는 ‘민생토론회’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단 약속은 지키기 못했지만 아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할 것이다. 소통 강화를 외치며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명분은, 아마 격무에 시달려 잠시 잊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 문장을 당당히 입장문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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