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백두대간 50일 종주… 아찔했던 조난 위기

[인터뷰]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

취미활동을 꼽으면 빼놓지 않고 등산이 나오는 시대, ‘꿈의 등반 코스’로 불리는 구간이 있다. 바로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종주길이다.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는 1월1일부터 약 50일간 김미곤·이억만 대장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6일은 걷고 하루는 기사를 쓰며, 700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여정이었다.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는 지난 1월1일부터 약 50일간 김미곤·이억만 대장과 함께 백두대간을 일시 종주했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까지, 6일은 걷고 하루는 기사를 쓰며 700km에 달하는 산길을 완주하는 여정이었다. 사진은 지난 1월2일 설악산 소청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김영주 기자. /김영주 제공


30대 대부분을 레저담당 기자로, 히말라야 동행 취재기자로 보낸 김 기자는 올해 만 50이 되며 이 같은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25살에 기자생활을 시작해 25년간 직장을 다니며 올해 만 50을 맞이했는데, 나름의 점을 찍고 싶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산은 인생의 도장(道場)’이라고 하잖아요. 나는 왜 걷는가, 나는 왜 사는가를 생각하며 명상과 치유의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특히 백두대간 종주는 최단 시간에 정상을 찍는 게 아니라 굽이굽이 봉우리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게 인생사와 비슷하단 생각을 했어요.”


애초 이번 종주는 중앙일보의 디지털 유료 구독 서비스인 ‘더중앙플러스’ 콘텐츠를 고민하던 게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부터 걷기를 주제로 ‘호모 트레커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던 김 기자는 우연찮게 김미곤 대장의 종주 계획을 듣고 동행을 제안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한 백두대간 동계 일시종주는 실제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예전에 각 대학 산악부가 신입생 훈련 코스로 많이 했는데 이것도 1990년대 이후 거의 끊겼거든요. 그래서 예전의 그 종주의 기운과 기백을 되살리고 싶다는 차원에서 이왕이면 동계 일시종주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힘든 걸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눈 많은 겨울에도 전략만 잘 짜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영주 기자는 계획했던 대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배낭 무게를 12~13kg 내외로 유지했다. 필수적인 장비를 제외하고 줄일 수 있는 건 결국 식량이라 ‘알파미(물을 부으면 밥이 되는 수분 제거 식량)’, 김가루, 미숫가루 등 건조 식량을 기본으로 아주 적게 먹는 방식을 택했다. 사진은 알파미. /김영주 제공


다만 준비 과정부터 쉽진 않았다. 대강의 날짜별 이동 구간과 숙박 계획은 잡을 수 있어도 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날씨 등에서 여러모로 운이 따라야 했다. 계획했던 대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배낭 무게를 13kg 내외로 줄이는 작업도 중요했다. 하루 평균 20km의 산길을 걸어야 하는 만큼 필수적인 장비를 제외하곤 대부분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결국 줄일 수 있는 건 식량이라 ‘알파미(물을 부으면 밥이 되는 수분 제거 식량)’, 김가루, 미숫가루 등 건조 식량을 기본으로 아주 적게 먹는 방식을 택했다. 한편으론 과연 6000자 분량의 원고를 하루 만에 써서 매주 마감할 수 있을까, 하는 기자로서의 고민도 컸다.

날씨와 관련해선 운이 좋았다. 올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지만 종주를 하는 동안 대설특보로 통제된 날은 전무했다. 김 기자 일행은 계획대로 딱 맞춰 2월15일 오전 7시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김영주 제공


다행히 날씨와 관련해선 운이 좋았다. 설악산국립공원 대청봉을 기준으로 누적 적설량이 3m가 넘을 만큼 올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지만 종주하는 동안 대설특보로 통제된 날은 전무했다. 일정을 맞춘 듯 김 기자 일행이 지나고 난 뒤에야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등이 통제됐다. “저희가 2월15일까진 지리산에 가야 했어요. 그날 이후부턴 산불방지 통제기간이라 길이 막히거든요. 아마 중간에 대설특보가 내려져 길이 막혔다면 완주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딱 맞춰 2월15일 오전 7시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으니 운이 정말 좋았죠.”


물론 겨울 산행 자체는 쉽지 않았다. 길이 있는 국립공원과 달리 그 외 450km 구간은 직접 ‘러셀(눈을 파헤치며 길을 만드는 방법)’을 해야 해 애를 먹었다. 조령산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수직절벽을 내려오고, 2주차 됐을 때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산행 중간 조난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덕유산국립공원 신풍령에서 빼봉을 지난 후였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김 기자는 “그날이 제일 위험했던 것 같다”며 “눈이 많이 내려 옷이 다 젖었는데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내복이 얼어버렸다. 저체온증이 오면서 많이 불안했는데 다행히 길을 찾아 13시간 만인 오후 8시30분, 대피소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겨울 산행은 쉽지 않았다. 길이 있는 국립공원과 달리 그 외 450km 구간은 직접 ‘러셀(눈을 파헤치며 길을 만드는 방법)’을 하며 나아가야 했다. 덕유산국립공원 신풍령에서 빼봉을 지날 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길을 잃어리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2월6일 신풍령에서 횡경재 구간 사이 김영주 기자. /김영주 제공


김 기자는 이런 일화들을 바탕으로 1월2일부터 매주 화요일, ‘호모 트레커스’에 10회 분량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연재했다. 애초 사람 얘기를 많이 담으려 했지만 겨울이다 보니 산장도 문을 닫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어, 백두대간의 생태와 등산 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번 종주는 에코 트레일을 기본으로 했어요. 산에서 나의 흔적, 배설물까지 모두 수거하며 다닌 거죠. 한국은 세계에서 주말 등산객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오물을 아무 데나 버리면 언젠가 분명히 문제가 됩니다. 산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어렵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기자는 이번 종주를 단순한 도전으로 끝내진 않을 생각이다. 향후 사회적 의미와 내용을 담아 백두대간 인문학스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서구에선 청소년 대상 걷기 프로그램이 많아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세유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범죄 이력이 있는 청소년과 산악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짝을 지어 산에 가는 거예요. 저는 백두대간 트레킹이 이 프로그램에 제격이라고 봅니다. 주변의 산악인, 유관 기관들과 협의 중인데, 아이들이 자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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