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 반성의 시간, KBS 다큐 불방으로 물거품됐다"

언론노조 등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 주최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 기자회견'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린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담당 PD는 지난주 금요일부터 6월로 방송을 미룰 수밖에 없는 사정을 출연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주인공을 비롯해 단원고 등 주요 출연자들은 10주기가 아니라면 출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PD는 출연자들께 거듭 사죄를 드렸으나 이미 상처 입으신 사실은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소속인 조애진 PD(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구역 중앙위원)는 제작본부장의 지시로 예정돼 있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가 제작 무산 위기에 처한 과정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이제원 KBS 제작1본부장은 4·10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4월18일 방영 예정으로 제작되고 있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6월 이후로 다른 재난들과 엮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시리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내린 이제원 본부장의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은 KBS 구성원에겐 참담함을, 세월호 참사 생존자·희생자 유가족에겐 또 한 번의 상처와 분노를 안겼다.

19일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KBS 다큐 인사이트 소속 조애진 PD가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연기 과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조애진 PD는 “총선 후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제원 본부장의) 인식이 과연 정상인가 의심스럽다. 그런 잣대라면 선거에 영향을 안 미칠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이 있겠나”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편성규약에 따라 제작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 이번 건에 대해 이번 주 TV편성위원회 개최를 본부장에게 요구하겠다”면서 “이 같은 절차를 밟기 전에라도 이제원 본부장은 빠른 시일 내에 10주기 방송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달라. 담당 연출과 팀의 목표는 방송을 제때, 제대로 내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엔 세월호 유가족 등도 참석해 KBS 수뇌부의 세월호 10주기 방송 연기 결정에 대해 비판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2014년 참사 당시 KBS의 과오를 먼저 언급했다.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계기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KBS를 항의 방문했던 일이다. 결국 “보도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김시곤 국장은 사퇴했고,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은 유가족을 직접 찾아 사과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19일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종기 위원장은 “10년 전 당시를 연상케 하는,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이제원 본부장은 세월호 참사 10주기 방송을 불방시켰다”며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 KBS의 사장과 제작본부장은 현 정권의 언론 장악과 세월호 지우기에 앞장서서 나팔수와 행동대장을 자처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으로서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으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세월호 이후 10년은 공영방송에게도 반성의 시간이었다. KBS 구성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거듭 반성하고 노력해왔다”면서 “하지만 이번 낙하산 박민 사장과 이제원 본부장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시도로, KBS 구성원들이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세월호 참사 10주기 불방 선언은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그간의 여정들, 함께 품기 위한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던 우리의 노력들을 한순간 수포로 돌리는 퇴행이고, 대한민국 사회의 안녕을 포기하고 공동체 의식을 해체시키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4월10일 총선과 4월18일 방송 예정일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정말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라면 그런 편향된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자는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그냥 용산이 낙하산으로 내리찍은 그 사장에게 충성하려는 자가발전 의지라면 그 또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KBS 시청자위원인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를 단지 정치적인 사안으로만 몰아가는 것 역시 문제”라며 “KBS는 2024년 방송 지표를 공정과 혁신으로 새로운 KBS를 삼았다. 온 사회가 애도해야 하는 사회적 참사를 지우는 것이 공정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과 1년 전 KBS는 다큐 인사이트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록과 기억을 다룬 ‘로숑과 쇼벨’을 제작했다. 이 방송은 잊힐 뻔 했던 역사를 재조명해 여러 곳으로부터 호평과 수상을 하기도 했다”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 KBS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KBS 시청자위원으로서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월호 참사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입을 막는 것은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다. 앞장서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짓밟고 있는 주체가 공영방송 KBS라는 데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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