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에 기반한 글로 독자를 유혹하고픈 기자라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과 언론]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 - 조문희·이지훈·이창수·전현진 지음

고경태, 고나무, 김당, 김동진, 김충식, 박상규, 이문영, 이범준, 장강명, 조갑제, 한승태, 희정. 이 12명의 이름 중 5명 이상을 안다면 당신은 이 시대에도 책을 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8명 이상이라면 아마도 업이 글과 관련 있을 확률이 높을 텐데, 대다수는 ‘내러티브 논픽션’이란 장르를 말할 때 이 인물들을 빼긴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일반 콘텐츠 소비자로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영화 <밀정>, <공작>,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자란 설명이 더 와닿을 게다. 책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사진>은 바로 이 ‘사실에 기반하되 소설처럼 구성을 고민한 글’을 쓰는 이야기꾼들을 인터뷰한 모음집이다.


함께 ‘좋은 기사’를 공부해온 5~8년차 전·현직 기자들이 공저했다. 조문희·전현진 경향신문 기자, 이지훈 동아일보 기자, 세계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타트업 기획·개발자 경험이 있는 이창수씨가 2021~2023년 사이 각 3인씩 ‘레전드’들을 인터뷰했다. 논픽션이란 타이틀을 달고 출판 시장에 나오는 장편 기사, 한 사안을 입체적으로 서술하면서 소설 같은 짜임새로 독자를 몰입시킨 외국 언론의 기사들을 보며 아쉬움을 품어온 이들이 국내 사례와 선구자라 할 이들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이는 어떤 갈증을 지녔던 젊은 기자들의 고민이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은 결과라 볼 수도 있다.


작가 인터뷰 글은 태생적으로 구조화된 형식과 내용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창작자로서 일가를 이룬 이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왜, 어떻게 쓰는가’로 수렴되는 여러 질문을 던져 직접 들은 답을 적는 구성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내용상으론 일종의 ‘작가론’이자 ‘글에 대한 글’로 귀결되고, 인터뷰 모음집에선 이 방식이 인터뷰이 수만큼 반복된다. 이 제약은 콘텐츠로서 인터뷰의 생명력이 인물 자체의 매력 혹은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에 기반함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다. 이 책에서 ‘내러티브 논픽션’ 작가들은 팩트에 기반한 글을 업으로 한다는 공통분모를 빼면 서로 너무나 다른데 구성의 방법론, 취재방식, 문장론, 중요한 가치 등이 구체적으로 제각각이란 게 중요한 지점이다.


예컨대 경찰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일화를 다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작가 고나무는 내러티브 논픽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장면과 캐릭터”라고 하지만 꽃제비 출신 탈북인권단체 대표 지성호를 다룬 <팔과 다리의 가격>, 한국 입시제도의 부조리와 관련한 <당선, 합격 계급> 등 논픽션을 쓴 장강명은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강조한다. 가난의 문제를 다룬 <노랑의 미로> 저자 이문영은 기법으로서 내러티브에 별 관심이 없고, 일상이 돼 뉴스가 되지 못하는 사회문제와 당사자 발언을 전하는 방법론에 집중한다. 의열단 폭탄투쟁 이야기를 그린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과 역사소설을 몇 편 쓴 김동진은 아예 “논픽션은 70%의 팩트에 30%의 상상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책은 역시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가장 소구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특히 팩트에 기반한 글로 독자를 유혹하고 싶은 언론인이라면 범죄, 노동, 첩보, 사법, 전기, 역사물 등 다양한 영역에 먼저 발을 디딘 이들의 고민을 엿볼 기회가 될 수 있다. 별개로 글에 관심이 없어도 하나의 업을 밀고 나가는 인물들 이야기로서 매력적이다. 책 인터뷰에선 한 작가만의 이야기론 정답으로 다가왔던 내용이 다른 작가 인터뷰에선 간단히 기각되거나 오답이 되곤 했는데 결국 우리가 타인에게서 봐야할 건, 제각각의 판단과 선택, 자기확신이 아니라 나름의 윤리의식과 기준, 태도란 방향에서다.


일례로 사법 논픽션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를 쓴 이범준은 기자 시절 ‘누구랑 친하냐’는 말을 들으면 ‘나를 양아치로 보나’ 당황하던 사람이다. 영화평론가가 영화감독에 대해 겉으로라도 ‘안 친하다’고 하는 게 쓰는 사람의 윤리라고 믿는다. 헌법재판관 인터뷰를 위해 영상자료원에서 해당 법관 고등학교 정학 사유가 된 영화를 찾아 섭외 이메일에 언급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1980~1990년대 법조인들을 도표로 그려 외우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 <고기로 태어나서>를 쓴 한승태는 꽃게잡이 배, 비닐하우스, 부품공장, 닭·돼지·개농장에서 각각 4~5년씩을 일하고서야 두 책을 썼다. 노동 관련 르포를 쓰는 희정은 편파적일수록 꼼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반도체 직업병 2세 질환을 다룬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아픈 아이를 낳았다’란 문장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팠다’로 고치며 시작한다. 사라져가는 귀한 태도를 발견하는 기회만으로도 책은 의미를 지닌다. ‘쓰는 이의 윤리’를 떠올려 본 누군가에겐 더욱 그럴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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