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라는 말

[이슈 인사이드 | 국제·외교] 권희진 MBC 기자

권희진 MBC 기자

지난 1월24일, 미국국방부의 군수품을 싣고 아덴만에서 홍해로 향하던 미국 선적 컨테이너선 2척이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미 해군의 호위를 받아 항해 중이었지만 후티는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선언한 후티가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의 30%가 지나는 요충지인 홍해 항로를 공격하면서 아시아와 북유럽 사이 운송비는 3달 만에 5배 가까이 폭등했다. 폭등한 운송비는 물가에 반영된다.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이 공습으로 보복에 나섰지만 후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10년에 걸친 사우디의 공습을 겪으며 공습에는 내성이 생긴 후티는 최첨단 무기를 앞세운 대규모 폭격에도 결정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지하에 미사일 제조시설을 갖춘 데다 차량에 실은 미사일을 발사한 뒤 이동해 원점 타격이 어렵다. 게다가 이란은 후티의 무기 곳간을 빠르게 메워 준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가진 미국, 영국의 최첨단 무기에 비하면 초라한 후티의 구식 미사일도 드론과 결합하면 상대의 공중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다. 후티의 공격은 홍해를 마비시키고 세계 경제를 위협하지만 이대로라면 미국이 후티를 완전 진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군’ 정도로 여겨졌던 후티를 세계 최강 미국도 당장은 어쩌지 못한다.


후티는 이란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확장했다. 이란은 중동의 가장 유력한 무기 공급처로 떠올랐다. 이란의 드론 생산 능력과 미사일 기술은 서방을 놀라게 하고 긴장시킨다. 3000기 이상의 탄도 미사일을 보유한 이란은 차곡차곡 미사일 재고를 늘리고 있다. 힘의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 맞서려는 나라들이 그러하듯 이란은 북한처럼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드론과 미사일 분야에서 기술과 생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란산 드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이용된다. 방공망 회피 기능이 탁월한 사거리 1400㎞ 이상의 이란제 정밀유도 미사일인 ‘케이바르 쉐칸’을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것도 확인됐다. ‘케이바르 쉐칸’은 유대인의 고대 유적지를 저격한다는 뜻이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규정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해 왔고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고 시설을 파괴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이른바 ‘저항의 축’을 결성했다. 가자 지구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레바논과 시리아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가 그들이다. 이란과 ‘저항의 축’의 연대를 더욱 공고하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호전적인 행동이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협상을 파기한 뒤 이란에 가혹한 제재를 가했고, 2020년에는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했다. 이를 계기로 이란은 동맹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이란을 등에 업은 후티, 헤즈볼라 같은 ‘저항의 축’은 지중해부터 페르시아만까지의 지역에서 미국을 괴롭히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미국의 힘은 압도적이지만, 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작용이 반작용을 낳듯 힘에 의한 압박은 그만큼의 저항도 불러온다. 중동에서 미국이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은 힘에만 의존하는 평화가 과연 전략적으로 효과적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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