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 또 패싱하나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윤 대통령은 올해도 새해 기자회견을 건너뛸 모양이다. 2022년 8월17일 취임 100일 회견 이후 닫힌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약속은 빈말이 됐다. 당선 직후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을 고백하겠다”고 한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겨 기자실을 같은 건물에 배치하고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열어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집권 초기 자신감은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은 한해 국정운영 기조를 밝히고, 위태로운 남북 관계와 고물가에 허덕이는 서민경제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현안에 대해 언론의 질문을 받고 설득을 구하는 자리다. 대국민 소통의 기본적 소임이자 지도자의 책무다. 새해 들어 부처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원하는 토론회라기보다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자기 할 말만 하는 ‘보여주기 쇼’라는 지적이 많다. 심지어 보수 언론조차 재원 대책도 없이 총선용 선심정책을 쏟아내는 ‘홍보장’으로 변질됐다는 걱정을 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 의정부시청 대강당에서 '출퇴근 30분 시대, 교통격차 해소'를 주제로 열린 여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은 새해 기자회견 대신 특정 언론과 단독으로 인터뷰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조율된 질문만 받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거부권 등 껄끄러운 질문을 피해가겠다는 수세적 행태다. 듣기 싫은 쓴소리에 귀 닫겠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득보다 실이 큰 기자회견을 패싱하겠다는 것인데, 정권 비판세력을 겨냥한 자신만만한 행동과 영 딴판이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카리스마 넘친 윤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집불통의 리더십으론 위기를 돌파해나갈 수 없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솔한 말을 듣고 싶다. 야당과의 협치를 멀리 하며 통합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삶이 팍팍한 서민들은 언제까지 인내해야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는지, 취업 경쟁에 내몰린 청년 취준생에게 내일은 있는지,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기업 총수를 대동하고 해외 순방을 다녔던 열정은 왜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에선 볼 수 없는지 묻고 싶다. 대선 후보기간 유세장에서 날렸던 시원한 어퍼컷은 왜 본인 가족 문제에서는 잽도 날리지 못하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은 정정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을 원한다.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고, 부당한 정치공세라면 반대편도 설득할 수 있는 포용의 정치를 원한다. 지금처럼 불리하면 뒤에 숨고, 약자에게 강한 지도자는 국민들이 보고 싶은 대통령과 거리가 멀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다른 의견을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방식은 유튜브 정치꾼에나 어울리는 모습이다. 재임 2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보다 큰 정치로 국민의 고충에 귀 열고,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는 대통령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인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다른 정치를 할 것으로 믿었던 국민들의 염원은 무리한 기대였는가. 국정을 결투하듯 승부사처럼 운영하는 독선적 모습이 갈수록 염려스럽다.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한데, 첫 단추도 못 꿴 숙제가 쌓여있다. 윤 대통령에게 새해 기자회견은 밀린 숙제를 정리하고, 초심을 다잡을 시간이다. 기회를 차버리는 악수를 두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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