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입된 ODA 예산 추적…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인터뷰] '태양광과 장작' 기획 보도한 구채은·전진영 아시아경제 기자

아시아경제 정치부 구채은·국제부 전진영 기자는 지난 10월 초중순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일주일 출장의 목적지는 동허이 꽝빈성 반 라오 콘. 동허이공항에서 1차선 비포장도로를 2시간가량 달려가야 나오는, 휴대폰도 안 터지는 오지다.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광 패널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설비는 빨래건조대, 보관함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동행한 사진부 허영한 부장이 “오늘 제일 인상 깊었던 건 태양광 장비에 장작꾸러미가 들어가 있던 것”이라고 한 게 기획 제목 <태양광과 장작-K원조 추적기>가 됐다.

기획 <태양광과 장작-K원조 추적기>을 선보인 아시아경제 구채은‧전진영 기자가 지난 10월 베트남 반 라오 콘 마을을 취재하며 태양광 설비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허영한 아시아경제 사진부장


구 기자는 지난 1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ODA(공적개발원조)는 우리가 납세하고 수혜는 타국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사업이다. 그 사이에서 관료와 기업, 국제기구 등이 대리인 역할을 하는데 해외다 보니 감시가 어렵고 사업도 너무 많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게 중요하고, 그분들을 주인공으로 얘길 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4월 ODA와 관련한 코이카 출장으로 키르기스스탄을 다녀온 게 계기가 됐다. 홍보목적의 취재에선 해외원조 민낯을 보기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탐사·기획보도에 갈증이 있던 차 알음알음 후배를 모았다. 기획재정부에 출입하는 송승섭 세종취재본부 기자, 전진영 기자가 참여했고,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업에 선정되며 외부 데이터 전문가도 영입할 수 있었다. 마침 윤석열 정부가 내년 ODA 예산을 40% 늘린 시점, 국격 상승이란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원조예산 실태를 통해 한국이 선진국인지 점검해보자 싶었다.

기획 <태양광과 장작-K원조 추적기>을 선보인 아시아경제 구채은‧전진영 기자가 지난 1일 본보와 서울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한 모습. /구채은 아시아경제 기자


자료수집, 데이터 분석, 모임 저널리즘클럽Q 참여, 전문가 미팅 등을 거쳐 취재영역과 방식을 구체화했다. 그런데 ‘ODA 실패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감사원 보고서엔 국가명이 이니셜로만 표기돼 있고, 국제단체, 해외언론, 한인회 등에 이메일 100통을 보내도 출장지를 정할 수 없었다. 전 기자는 “ODA 진행 부처에선 자기들이 망한 건 알려주지 않는다. 망했다는 곳에 연락해보면 ‘사실 안 망했다’는 식이었다”며 “막판 한 달은 휴일 상관없이 계속 찾았는데 어떡하나 싶었다”고 했다. 구 기자는 “출장지 선정이 굉장히 막판에 됐다. 베트남 꽝빈성 태양광 사업이 실패했다는 현지언론 보도 등을 보고 가기로 했지만 도착 전까지도 제대로 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간 약 21억달러가 지원된 베트남은 한국이 가장 많이 원조한 국가이지만 반 라오 콘 마을을 통해 본 사업 현주소는 엉망이었다. 주민들은 2016년, 약 1년 정도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지만 현재 헤드랜턴을 사용하며 지내고 선풍기, 냉장고도 쓰지 못한다. 학교 교실 천장엔 전구가 없어 날씨에 따라 그날 공부를 결정한다. 낮 동안 차랑용 배터리를 충전해 아이들 공부용으로 쓰는 가정, 석유 등잔에 화상을 입었거나 어두운 밤 뱀에 물린 주민까지 수원국 주민의 삶 자체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국민 세금 1200만달러가 쓰인 사업의 현재는 그랬다.

해당 기획의 인터랙티브 페이지 캡처. 내러티브 형식으로 원조를 받은 수원국 주민의 목소리, 삶을 상세히 담은 시리즈에서 주인공 격인 호티담 할머니의 모습.


특히 내러티브 보도로 예산이란 숫자를 실제 개도국 주민에게 미친 영향, 개선의 필요성 등 인간의 문제로 바꿔 전했다는 강점이 있다. 일행인 운전기사·통역자까지 나서 마을 여성회장 집에서 이웃집으로, 그 다음집으로 조금씩 더 곁을 만들며 사연을 듣고, 노트, 앨범, 영수증, 사진, 그림을 보며 마을 64가구의 이야기를 모았다. 출장 4일째엔 현지 하청업체 대표를 취재하면서 한국정부와 현지 간 입장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 기자는 “갑자기 들이닥친 거고 (업체에서) 대화를 해줄지 알 수 없었는데 현장에서 의외로 잘 풀렸다”며 “사업은 잘못됐지만 주민들의 삶을 비참하게 왜곡하거나 시혜적으로 보는 시선이 될까 싶어 고민스러웠다. 보통 방식으로 쓰면 그렇게 읽힐 것 같아 솔루션 제시 대신 다 보여주고 독자 판단에 맡기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이 보도를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정부의 ODA데이터 485만여개를 전수분석한 결과가 받치는 구조다. 해외원조 예산 덩치는 커졌지만 “10여년간 개발도상국에 대한 한국의 원조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ODA 예산을 수십 개 부처가 나눠갖는” “한국에서만 포착되는 현상”이 원인이란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500억대 해외원조사업, 계약서조차 없었다>, <개도국 공무원에게 노트북 주는 게 ODA?…‘방만 운영’ 도마> 등 단독보도도 나왔다.


5개월 취재 끝에 지난 10월25일부터 11월1일까지 지면에 실리고, 별도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꾸린 보도는 경제지로선 이례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11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공여국의 예산 상황과 주요 계약당사자 취재, 나아가 수원국 국민의 삶까지 심층조명한 ODA 사업 보도는 탐사·심층기획 경험이 일천한 조직에 새 모델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 구 기자는 “수원국 사람들이 ‘한꾸옥’(한국)을 생각하고, 또 신뢰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호티담 할머니를 만난 여운이 길다”며 “여러 사람이 토론하고 조율하며 공동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이런 작업이 계속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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