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엑설런스랩 기획유닛팀 팀장 유대근 기자는 11월 선보인 기획을 진행하며 “쓰레기를 진짜 미친 듯이 많이 주웠다.” 미국 메이저리그 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모교 일본 하나마키히가시고교 야구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기획취지와 직결된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일본에 도착한 시점까지도 학교에서 인터뷰 수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재학 당시 오타니는 감독 제안에 따라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표를 작성했고 여기엔 ‘남의 운을 줍는다’는 의미의 ‘쓰레기 줍기’가 포함된 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행운을 믿을 수밖에 없어서 오타니 방식대로 했는데 결국 연락이 왔다”고 지난 24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효험 때문인지 한국언론 최초로 오타니의 은사 사사키 히로시 감독을 인터뷰했다. 그는 감독보다 교육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야구만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모든 선수가 운동에만 목숨 걸지 않는 분위기” 속에 2021년 개교 이래 첫 도쿄대 합격생이 야구부원에서 나오기도 했다. 전교생 대다수가 운동부 소속이며 인간의 기본을 닦는 교육으로 본다는 학교의 설명. 유 팀장은 “학교에 많이 갔는데 학생들은 친구들과 치열하게 노력한 기억, 교사나 학부모는 인성, 교육 차원이란 말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며 “‘인사’를 특히 강조하는데, 오타니 학교에선 마주친 모든 학생들이 인사를 해서 ‘곤니치와’만 100번을 한 거 같다. 스포츠가 단지 공을 잘 던지고 차는 걸까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기획은 ‘운동선수도 공부시켜라’ ‘학생들 운동 시켜라’ 같은 제안이 아니라 대수술을 위한 진단이다. 기획유닛팀 박준석·송주용 기자, 스포츠부 김지섭 기자가 참여해 이달 내놓은 총 31개 기사는 엘리트스포츠 중심의 한국 체육정책을 수술대상으로 지목한다. ‘김연아’, ‘손흥민’, ‘김연경’ 등의 이름에 가려져 왔지만 한국 스포츠의 저력은 뿌리부터 허물어지고 있었다. 반면 최근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압도 중인 일본에선 보통의 학생조차 ‘문무양도’를 하는 생활체육이 교육을 겸해 시도되고, 이 저변이 엘리트스포츠 인적풀이 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충청, 전라, 경상, 경기 등 지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소년 팀을 취재한 박준석 기자는 “마이클 조던이 와도 우승을 못 시킨다”는 현실을 확인했다. 전국체육대회 여자농구 고등부 예선 삼천포여고-대전여상의 경기가 대표적이다. 5명이 필요한 게임 시작. 멤버 부족에 따라 십자인대 부상으로 재활 중인 선수가 출전했고, 코치진은 바로 벤치로 나오라고 했지만 선수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상대편 코너에 서서 노마크 때만 3점슛을 던지게 했고 팀은 석패했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박 기자는 “혼자 상대편 코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외롭게 서 있는 뒷모습에 울컥했다. 모든 선수가 풀타임을 뛸 수밖에 없고, 4강팀조차 교체멤버가 1~2명에 불과한 여건이었다. 한 팀에서 4명만 뛴 게임도 있었다”며 “5명으로 간신히 운영하는 현재는 감독의 전술과 전략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소멸의 길에 들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했다.
프로 입성 후 야구, 농구, 배구 선수 중 6년 이상 살아남는 비율이 일부 종목의 경우 10%도 안 되더란 자료를 입수한 송주용 기자의 단독보도를 보면 이유는 명확하다. 생존이 불확실한 업에 아이를 떠밀 부모는 드물기 때문이다. 생활체육 인프라 실태도 조사한 송 기자는 477억원이 투입됐지만 완공 직전 비행안전구역이란 통보를 받아 조명을 설치 못했고 이에 야간이용이 어려운 충북 청주의 내수생활체육공원 사례, 운동장과 체육시설 이용을 금한 서울 일부 지역 학교 상황도 발품을 팔아 기사에 담았다.
유일한 스포츠 취재 경력자로 이 문제의 한 축인 ‘전문 체육인’을 담당한 김지섭 기자는 “저항이 있던 이슈인데 생각이 변하는 걸 본 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운동한 애를 공부시킬 게 아니라 공부한 애를 운동시켜야 한다’거나 ‘공중도덕’ ‘팀 활동 경험’ 등을 이유로 운동의 필요를 강조한 이영표 해설위원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참여는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이후 두 번째 기획을 낸 엑설런스랩 기획유닛팀으로선 취재부서와 협업을 위한 팀 설립목적과 맞물려 조직에 경험치를 남긴 측면도 있다.
기획은 묵은 담론의 연장선에 놓이지만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시대변화에 맞춰 스포츠 자체의 효용을 국민 전반에 확대하는 게 더 중요하고, ‘금메달’은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시선. 보도에 실린 자체여론조사에선 60.4% 국민이 ‘국제대회 출전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꼽기도 했다. 팀 막내 송 기자는 “체육은 특별한 게 아니고 일상이어야 한다는 결론인 것 같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운동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게 바람직한 방향 아닐까”라며 “대학입시 전형에 넣어야 바뀔 거란 말씀도 있는데, 어느 하나만 바뀌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 본다. 주 관심사가 아니던 이슈를 끌어낸 만큼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