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검토도 없이... 임명동의제가 방송법 위반이라는 KBS 사장

박민 사장 "KBS본부와 '임명동의제' 단협 보충 협약하겠다"
언론노조 KBS본부 "박 사장, 법률 검토 받았다며 이사회서 거짓말"

KBS가 지난 23일자로 평기자 인사를 냈지만, 여전히 보도국장(통합뉴스룸국장)은 공석인 상황이다. 지난 13일 박민 사장 취임과 동시에 본부장·센터장 등 간부급 인사를 발령한 KBS가 후임도 정하지 않은 채 전임 보도국장을 수원 인재개발원으로 보내고선 약 3주째 국장 지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부에 이어 부장, 팀장 평기자까지 인사를 속전속결로 진행했으면서 임명동의제가 필요한 5개 국장(통합뉴스룸국장,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2국장, 라디오제작국장)은 계속해서 공석으로 두는 박민 사장의 의중은 뭘까.

24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여의도 KBS 본관에서 KBS 이사회를 앞두고 '낙하산 박민은 임명동의제 폐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24일 KBS 이사회에 참석한 박 사장은 “임명동의제를 준수할 경우 방송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행 방송법상 공사 직원은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사장이 임명하는데 현재 정관 인사규정엔 임명동의제가 없고, 사실상 노조가 임명동의 하지 않으면 인사를 철회해야 돼 이 규정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할 경우 방송법 위반을 초래”한다는 거다.

또 그는 “인사권에 본질적인 침해가 있을 경우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례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임명동의제는 이사회 보고 의결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관련 규정의 개정이 없어 KBS와 KBS 직원에게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판례가 있다”고도 했다.

이날 박 사장은 “노조와 보충 협약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사회가 끝난 오후 곧바로 KBS는 “오늘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측에 국장 임명동의제와 관련해 단체협약 보충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청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KBS 노사는 지난 2019년 단체교섭에서 주요 부서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단체협약 제29조)를 신설했고, 2022년 단체교섭엔 임명동의 대상 부서장을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확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 제29조(임명동의) 이사회 보고’ 안건으로 사측이 이사회 소집을 요구해 개최된 KBS 이사회에서 박 사장은 “그간 관련 법규와 KBS 전반 관련 판례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사내 법무실과 관련 부서 등은 임명동의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실에 자문을 구한 게 맞느냐”는 이상요 KBS 이사의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사장과 동석한 류삼우 부사장이 “인적자원실이 별도로 진행한 것”이라며 입장을 번복했다.

이상요 이사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내부 법무실은 물론이고 외부(법무법인)도 최소 2곳 이상 받아야 된다”며 “방송법 위반, 단협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 두 개가 충돌할 경우에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등을 검토해야지 사장 ‘뇌피셜’로 어설프게 이야기하면 되느냐”고 질타했다.

일부 여권 추천 이사들은 현재 임명동의제가 근본적 문제가 있다며 박 사장의 입장에 동조했다. 황근 KBS 이사는 “편성규약부터도 상당히 위헌 소지가 많다. 제가 볼 때 보충 협약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 제도가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따져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공영방송을 모델로 한 건데, 독일 공영방송은 인사에 대해 사장이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사장의 권한이 있다”고 했다.

이에 정재권 KBS 이사는 “이사 몇 분이 단협을 존중하지 말라고 경영진에게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데 대단히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위법성 논란이 있다면 법원에 따지면 된다. 이대로 노사협약 절차를 무시하거나 임명동의제 진행하지 않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이날 언론노조 KBS본부는 박 사장의 이사회 발언을 두고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KBS본부는 “단협은 노사가 상호 합의 하에 맺은 것으로 별도의 이사회 보고가 필요 없는 사안”이라며 “실제로 그동안 단협 체결 전 단협 내용과 관련해 이사회 보고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권 이사들은 사측 편을 들며 임명동의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사장은) 법무실 검토도 제대로 받지 않아 놓고 받았다고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회사 법무실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인적자원실에서 검토하면 그게 회사 내부 법률 검토가 되는 것인가. KBS가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라며 비판했다.

KBS본부는 “당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하나하나가 단협 위반이자 부당노동행위”라며 “만약이라도 임명동의없이 국장을 임명한다면 해당 인사에 대한 가처분은 물론, 낙하산 박 사장 등에 대해서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추가 고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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