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피의자 보호로 태도 바꿔"…"피의자 공개 효용도"

언론중재위원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토론회

신림동 성폭행 살인범 30살 최윤종,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범 22살 최원종, 또래 살인 23살 정유정···.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와 이에 따른 언론 보도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사기관은 여론몰이를 위해 기준이 불분명한데도 자의적으로 공개 결정을 하고, 언론은 범죄예방효과가 불분명한데도 무리하게 보도해 인권을 해친다는 것이다.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를 주제로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 15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에 신중해야 하고 이에 따라 언론도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실명이나 익명 중 어떻게 보도할지는 언론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를 주제로 언론중재위원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제공=언론중재위원회​

변호사인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정보공개에 적극적이라고 알려진 미국도 일부 지역에서는 피의자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수사기관을 취재하는 언론도 이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이나 실명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조사관은 “(전국 16개) 연방항소법원 사이 대립하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연방항소법원은 머그샷(범죄자의 얼굴 사진)을 보호해야 할 사생활은 아니라고 했다”며 하지만 “제6항소법원이 2016년 태도를 바꿔 개별 사안마다 사생활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머그샷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연방 법무부가 피의자와 피고인의 이름과 나이뿐만 아니라 거주지와 고용 상태, 혼인 여부 등 배경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주 등에서는 체포된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누군가를 함부로 구속하지 않는지 공중이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조사관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디지털 시대에는 사진이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배포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미국 사법부가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단 피의자 본인이나 주변에 피해가 생기면 주워 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몇 머그샷 전문 웹사이트는 사진을 지워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항소법원 태도 변화의 배경에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언하고 있다. 김 조사관은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국내외 현황과 입법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제공=언론중재위원회

반대 의견도 나왔다. 김송옥 중앙대 법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명이나 익명 보도는 개별 언론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전제하면서 “피의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해악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피의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오히려 피의자에게 유리한 제보가 이어질 수 있고, 다른 피해자나 범죄 사실이 추가로 밝혀질 수도 있다”며 “익명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피의자로 지목되는 것도 막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달 제정된 '특정 중대범죄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언론 보도에 악영향을 줄 우려도 나왔다. 김 선임연구원은 “법에서 정한 범죄 종류 외에는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함으로써 습관적이고 무책임한 익명 보도 관행을 고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과 언론은 별개인데도 검경의 피의자 공개가 이를 보도한 언론을 면책해준 것처럼, 반대로 수사기관이 공개하지 않았는데 언론이 실명 보도를 하면 불법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상정보공개법은 수사나 재판 받는 사람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를 공개할 수 있는 죄목의 범위를 성범죄와 범죄단체조직죄, 마약범죄 등으로 지금보다 넓혀 정한 법이다. 그래도 검경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여전히 거치게 돼 있다. 내년 1월이면 새 법이 시행되지만 지금과 같은 논란이 계속될 수 있는 셈이다.

동아일보 법무팀장을 지낸 장수민 변호사는 이 법에 대해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면) 수사기관이 보상하도록 한 규정까지 있어 공개에 더 소극적으로 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이 공개를 검토할 의지 자체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자인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의자를 공개해 얻을 범죄예방효과와 같은 효용성을 너무 따지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미국은 진실성만 있으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데, 우리는 진실성에 공익성까지 요구하다 보니 이런 논쟁이 나오는 것 같다”며 “이런 것을 따지지 않는 것이 언론의 자유”라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가 효용을 특별히 인정받기 때문에 허용되는 자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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