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충분하다더니… 뉴스타파 제재 '발 뺀' 방심위

['불법심의' 법적 책임 부담 느꼈나]
시정요구 대신 서울시로 이관
신문법 위반여부 검토 요청키로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가 허위·조작됐다며 전례 없는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막상 제재를 두고는 한발 물러섰다.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8일 회의를 열어 뉴스타파에 대해 삭제 또는 접속차단 등의 시정요구를 하는 대신 관할 지자체(서울시)에 심의 결과를 통보하고 신문법 위반사항 검토를 요청키로 했다. 요란하게 심의만 하고 공은 서울시로 넘긴 것이다.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에 대해 무더기로 과징금 등 중징계를 한 방심위가 정작 원 보도에 대해선 아무 손도 못 쓴 셈이다. 이를 두고 방심위원들도 ‘불법 심의’ 논란과 관련한 법적 책임에 부담을 느꼈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지난 9월26일 출범한 방심위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이 센터를 통해 접수된 유일한 통신심의 안건인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에 대해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8일 시정요구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심위는 앞서 지난달 11일 뉴스타파를 통신소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고 의견진술을 결정한 뒤 보도자료까지 내어 “인터넷 언론사 콘텐츠에 대해 통신심의 대상으로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이후 첫 심의사례”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권력의 불법적 검열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며 출석 의견진술과 서면 진술까지 모두 거부, 3주 만에 열린 회의에서 여권 측 위원들은 “시정요구에 실익이 없다”며 ‘기타’에 해당하는 관할 지자체 통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미 인용 보도 등이 다 된 상황에서 삭제 또는 접속차단 등의 시정요구는 의미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난 9월 서울시가 보도자료를 통해 “뉴스타파의 신문법 위반행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 또한 실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야권 측 윤성옥 위원이 “우리는 독립기구이고, 내용규제를 하면 된다. 정부와 연결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서울시에 대한 요구 역시 실효성이 없으므로 각하를 결정하는 게 적합하다”고 지적했으나, 여권 측 김우석·황성욱 위원은 뉴스타파 보도가 “사회혼란 정보”에 해당하는 만큼 행정 조치 요청이라도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충분하다”며 무리하게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하고도 시정요구조차 하지 못한 데 따른 역풍이 크다. 뉴스타파는 8일 입장문을 통해 “애초에 인터넷 언론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도 갖추지 못한 방심위가 숱한 여론의 비판 속에도 심의를 강행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며 “처음부터 심의의 목적이 심의 그 자체가 아닌 뉴스타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가짜뉴스 프레임 씌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방심위 내부에도 “위원들조차 법적 책임에 자신 없어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미 여권 측 위원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언론 심의와 관련해 시각과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황성욱 위원은 “인터넷 언론에 대해 시정요구를 한다는 건 적절치 않고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김우석 위원도 “신문은 사유재산이고 인터넷도 신문 영역”이며 “통신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있어 방송과 기준이 같을 수 없다”고 말했다. 레거시 언론의 인터넷 기사도 통신심의 및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류희림 위원장의 입장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류 위원장이 강행 중인 ‘가짜뉴스 심의’는 더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앞서 방심위 팀장 11명이 가짜뉴스 심의의 위헌·위법 논란 등과 관련해 우려를 표하는 의견서를 낸 데 이어 이달 초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소속 직원들이 원 부서로 보내달라며 방심위 노동조합을 통해 고충처리를 접수했다. 센터 소속 평직원 전원이 지장까지 찍어 관련 업무의 부당성과 부담을 토로한 것이다. 지난 10일 경향신문의 관련 보도에 방심위는 설명자료를 내어 “일방의 주장만 전한 해당 보도는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열심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본 위원회 직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며 반박했지만, 내부 반발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방심위 노조 임원 선거에 출마한 김준희-지경규 후보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일터가 방송장악의 칼춤을 추고 있다. 가짜뉴스 잡겠다며 휘두르는 몽둥이가 위원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현재의 위원회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선로를 이탈한 열차처럼 폭주하고 있다”며 “탈선한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우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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